이놈들이 '앵~앵~' 거리며 사람을 희롱하누나. 처음엔 비문증(飛蚊症)인가 싶었다.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눈의 병증(病症) 말이다. 그러나 허상이 아닌 실체였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말은 속담(俗談)일 뿐이다. 며칠째 거실에 놈들이 어른거린다. 잡고야 말 테다. 가시권에 들어오면, 손바닥으로 때려잡을 작정이었다. 물리적 타격(손싸대기)은 화학적 타격(살충제)보다 인도주의적이다. 물론 모깃불을 피우는 간디(Gandhi)식 비폭력 방법이 있지만, 아파트에선 용납되지 않는 짓이다.
모기와의 혈투(血鬪). 고도의 신경전을 치러야 하지만, 해 볼 만한 싸움이다. 그러나 그건 왕년의 무용담(武勇談)일 뿐. 나의 전투력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놈은 눈앞에 나타났다 금세 사라진다. 따라잡을 수가 없다. 놈이 빨라진 게 아니다. 내 눈이 늙어 버린 거다. 적이 있는데,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비단 눈뿐이랴. 신체 전반이 둔해졌다. 살충제의 도움을 받았지만 헛일이었다. 백전백패(百戰百敗). 누구를 탓하랴. "너 잘났다. 내가 졌다."
시(詩) 한 수로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제 뺨을 제가 때리지만 헛방 치기 일쑤요, 넓적다리 다급히 치지만 녀석은 이미 떠나 버렸네. 싸워 봐야 공은 없고 잠조차 설치기에, 지루한 여름밤이 일 년처럼 길구나." 다산(茶山) 정약용의 시, '증문'(憎蚊)의 일부분이다. 증문은 '얄미운 모기'란 뜻이다.
가을이 모기의 전성기가 됐다. 여름보다 더 왕성(旺盛)하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모기가 가장 많았던 때는 10월 말이었다. 심지어 11월 중순까지 모기가 설쳤다. 11월 둘째 주에 채집된 모기가 8월 주 평균의 두 배를 넘었다. 기후변화 탓이다. 여름과 가을의 기온이 갈수록 높아진다. 모기 개체 수는 25℃ 안팎에서 가장 많다. 가을 더위로 모기의 활동 시기가 길어졌다. 반면 여름철 극심한 고온에선 모기 수가 줄어든다.
다행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놈들이 이젠 물러나려나. 방심은 금물이다. 언제 또 날뛸지 모른다. 발호(跋扈)하는 게 모기뿐일까.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 "특히 여의도 일원의 웅덩이를 조심하라." 선량한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것은 모기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