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당신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기억하겠습니다  

입력 2025-10-15 11: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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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책] 애도하는 사람
[책] 애도하는 사람

"그는 누구에게 사랑받았을까요?

누구를 사랑했을까요?

어떤 일로 누군가 그분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을까요?"

감히 어떤 언어로도 포획할 수 없는 정조(情操)가 있다. 독후감이나 서평으로는 단 한 줄도 묘사할 수 없는, 아니 그래서는 안 될 문장이 있다. 내겐 이 문장이 그랬다.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처음 만난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국내 판이 나오고 이틀 후였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분량이 많잖아, 라는 첫 느낌을 누르고 눌러 중반부를 넘어설 때까지도 책의 심장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쉽사리 속을 보여주지 않는 진중함과 깊은 심연에 발을 디딘 아득함. 그것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서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찰스 말로우의 심정 같은 것이었다.

내용이라고는 애도하는 사람과 그 주위에 포진한 세 명의 이야기가 전부인 소설.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깊은 탄식과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줬고, 타인을 위해 기도할 힘을 안겨주었으며,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용서하는 행위에 대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 무섭고도 무거운 인생 매뉴얼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괴물 같은 책과 만났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했을 당시, 그러니까 3년 전이었나 4년 전이었나. 아니면 꿈이었을까. 어쨌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1차 때는 겪지 못한 일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누워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읽던 책을 접고 다른 책을 꺼냈다.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나를 기억해줄 사람은 과연 누굴까,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잡스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시 '애도하는 사람'을 잡았고, 600쪽이 넘는 책을 거침없이 읽어 내려갔다.

주인공 사카쓰키 시즈토와 비교할 것도 없이,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었다. 친절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개인주의를 방패 삼아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제외하기 일쑤였다. 나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웠고, 타인에게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내 방식대로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고 여겼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삶이라도 괜찮다고 외쳤지만, 정작 홀로 쓸쓸히 맞을 노년을 겁내는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내 안에는 작중 마키노와 준코와 유키요가 나란히 똬리를 튼 셈이었다. 힘을 내어 읽었다. 6번째 완독이었다. 시의적절하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 읽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많이 웃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누군가 힘들고 지쳐 위로가 필요할 때 읽을 만한 책을 요청한다면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러나 기꺼이 건넬 것이다. 견줄 바 없이 '내 인생 책' 중 하나인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을. 체념과 낙담 가득한 일상이 반복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걸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