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모든 것
오정미 지음/ 무제 펴냄
"당신의 인생 영화는 무엇입니까?"
영화 '버닝'의 각본가로 이름을 알린 오정미 작가의 첫 에세이집 '내 모든 것'이 출간됐다. 이 책은 누군가의 기억과 상처를 영화와 연결 짓는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무제'는 배우 박정민이 직접 설립해 화제를 모은 곳이기도 하다. 영화와 연극에서 연기 경험을 쌓은 박정민은 이후 출판업에 뛰어들어 이번 신간을 선보였다. '내 모든 것' 역시 사람들의 삶과 영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만난 열세 명의 인물과의 대화를 담았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두 수선공, 요가 강사, 노숙인, 인디 뮤지션, 온라인 원어민 강사, 어린 시절 친구 등 다양하다. 그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모두 자기만의 인생 영화를 갖고 있다.
저자는 이들에게 "당신의 인생 영화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이는 오래된 고전 한 편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짧은 장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선택의 이유를 듣다 보면, 그것은 단지 '좋아하는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그 영화는 각자의 삶과 맞닿아 있고 어쩌면 가장 개인적인 상처와 기억을 꺼내게 하는 매개다.

책에는 상처와 폭력, 상실과 고독이 빈번히 등장하지만 절망의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이 고통의 흔적을 통해 인간의 회복력을 드러낸다. 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장면에서 그는 "그때 가해졌던 폭력은 몸에 명백한 흔적을 남겼다고, 그때 분명히 아팠다는 것을 이제는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안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누군가의 상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 머문다.
이 책은 "어쨌든 모르는 슬픔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결국 물어야만 들을 수 있는 법이다"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상처받은 이들에게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질문한다. 질문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통과해야만 진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그 진실의 문턱에서 멈추지 않고 묻고, 듣고, 기록한다.
저자는 시나리오를 써온 사람답게 장면을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한 문장이 하나의 프레임처럼 다가오고, 독자는 그 문장을 읽으며 마치 카메라를 든 듯 인물의 표정과 숨소리를 함께 느낀다. 저자는 상실에 대해 말하면서도 눈물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감정을 담담하게 끌어안으며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상실을 꺼내 보게 만든다.

특히 '내 모든 것'은 '여성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삶의 미세한 결을 따라가며 여성들이 겪는 상처와 회복을 조심스럽게 포착한다. 여성들이 서로의 아픔을 듣고, 함께 증인이 되는 과정이 이 책의 밑바탕에 흐른다.
영화라는 예술 매체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 또한 독창적이다. 영화는 단순한 취향의 표현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언어로 기능한다. 작가는 그것을 통해 예술과 현실, 기억과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은 추천사를 통해 "평범한 관객들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는 어떤 현자의 가르침보다 더 큰 깨달음을 준다"고 썼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와 출판사 무제의 대표이자 배우 박정민도 "이 책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가장 섬세한 방법"이라 평한 바 있다.
'내 모든 것'의 페이지마다 스며든 슬픔과 희망, 상처와 위로는 어느새 독자의 마음속에도 조용히 자리 잡는다. 독자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자신의 기억과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저자가 꺼내는 상처와 회복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뿐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영화와 삶, 기억과 감정이 맞닿는 그 자리에서 독자는 조용한 깨달음을 얻는다. 288쪽, 2만1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