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향이 진하고 물기가 적어요"
"송이 값 떨어져도 마음은 넉넉해요"
"산의 향이 돌아왔다, 시장도 들썩"
10일 오후,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봉화군산림조합 공판장 마당엔 송이 향이 자욱했다. 갓은 아직 피지 않고, 몸통은 곧게 선 '1등품'이 쏟아질 때마다 선별대 위 손길이 숨가쁘게 움직였다. 한동안 '금송이'라 불리며 자취를 감췄던 봉화의 송이가 올가을, 드디어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날 공판장은 갓 따온 송이를 들고 온 산주들과, 이를 좋은 값에 낙찰받으려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총 반입량은 230㎏. 1등급은 1㎏당 55만원, 2등급은 31만1천100원, 3등급은 22만5천원, 등외품은 17만2천900원에 거래됐다. 하루 전 1등품이 38만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출하량에 따라 가격은 하루새 급등락을 반복했다.
추석 전 '금송이'라 불리던 1등급 송이는 1㎏당 80만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산문이 열리면서 공급이 늘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봉화군에선 지난 7일 첫 공판이 열린 뒤 나흘 만에 누적 반입량이 637.9㎏에 이르렀다. 지난해 같은 시기 첫날 반입량이 1.6㎏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그야말로 '송이 풍년'의 해다.
산림조합 관계자는 "역대급 가뭄과 폭염 탓에 출하가 20일 이상 늦어졌지만,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고 습도가 안정돼 송이 생육엔 최적 조건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연휴 택배 중단으로 거래가 주춤했던 영향도 가격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갓 닫히고 몸통 곧은 게 진짜 향
공판장 안 선별대에선 송이를 감정하느라 손길이 바쁘다. 28년째 등급을 골라온 박모(60대) 씨는 "올해 송이는 색이 곱고 향이 진하지만,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갑자기 줄 수도 있다"며 "8월 가뭄 탓에 포자가 멀리 퍼지지 못한 점이 변수"라고 했다.
산주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봉화 재산면의 이모(70대) 씨는 남편과 함께 새벽부터 산을 올랐다. 부부가 공판장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 "오늘은 1등급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6㎏ 중 600g밖에 안 됐다"며 웃었다. 송이를 신문지에 곱게 싸며 "그래도 이 냄새 하나로 고생이 잊힌다"고 덧붙였다.
◆"송이 향이 돌아왔다, 산이 숨을 쉰다"
정영기 봉화군산림조합장은 "일조량과 습도가 잘 맞아 송이 균사가 고르게 퍼지고 있다"며 "현재 추세라면 60~70%는 더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국 송이 공판량은 4만8천983㎏. 이 가운데 강원과 경북 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공식 공판 외에도 시중 거래량이 3배는 더 될 것"이라는 게 현장 상인들의 말이다.
봉화군 역시 때아닌 풍년에 들뜬 분위기다. 군 관계자는 "작년엔 송이가 거의 없어 축제 의미조차 퇴색했지만 올해는 뒤늦게나마 향을 느낄 수 있게 됐다"며 "오는 1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송이축제도 모처럼 활기를 띨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뭄과 폭염을 견뎌낸 봉화의 송이는 다시 산을 채우고 있다. 그 향이 농민의 얼굴에, 공판장의 흙내에, 시장의 바람에 퍼졌다. 값이 오르내려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송이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올가을 봉화의 공기는, 다시 산의 냄새로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