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질서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는 혁명은 평등을 지향하는 듯 보인다.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둔 사회혁명과 기술 진보에 따른 산업혁명도 기회와 생산, 자본 재분배를 통한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지지 세력을 규합(糾合)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물은 항상 정반대로 치달았다. 농업혁명, 공산혁명, 산업혁명 이후 공동체 내부 서열은 더욱 공고해졌고, 불평등 심화로 계층 이동 사다리는 차츰 허약해졌다. 산업혁명은 사회적 해체, 농촌과 도시 빈민층을 발판 삼은 자본 계급의 등장을 촉발했고, 식량 생산과 소득 증가를 짓누를 정도로 불평등이 심화했다. 자본과 기술 획득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여성과 아동은 값싼 노동력 제공자로 전락했고, 사회는 이를 당연시했다.
인공지능(AI) 혁명도 앞선 혁명들의 전철(前轍)을 밟을 것이다. AI 등장 전 인류가 소박하고 행복했노라고 회상할 정도로 가혹한 불평등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인간 능력 확장을 위한 도구가 일자리를 빼앗고 기회를 제거해 상실과 박탈의 그늘로 인간을 내쫓을 수 있다. 최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임금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지만 자산 수익률 상승 효과로 부(富)의 불평등은 심화할 전망이다. AI 업무 대체가 단순 노무직보다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감소를 가져오지만, AI 덕분에 정보를 거머쥔 고소득 노동자들이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통한 자본소득을 크게 늘리면서 오히려 부의 불평등은 커진다는 말이다. 정보와 자본의 밀착은 전례(前例)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될 것이며, 둘의 시너지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독점적일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얼마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토의를 주재하며 "극심한 기술 격차가 '철의 장막'을 능가하는 '실리콘 장막'으로 작동해 전 세계적 불평등과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이라면서 '모두를 위한 AI' '인간 중심의 포용적 AI' 혁신을 강조했다. AI에 국운을 걸다시피 한 이재명 정부는 전폭적 투자를 약속했지만 불평등 대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짐작건대 자본세 부과, 기본소득 지급 등 복안을 갖고 있지만 공론화하기엔 시기상조로 보는 듯하다. 사족(蛇足)을 달자면 '모두를 위한 AI'는 인류의 모든 부를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ks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