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이어 KBS서 노제…눈물 닦고 박수 치며 "선배님 감사합니다"
이홍렬 "무대 위 혁신가이자 무대 뒤 스승"…박준형 "우리 직장 만들어주신 분"…
병상 지킨 김신영 "나의 어른"…김정렬 '숭구리당당' 퍼포먼스 선보이기도
'코미디계 대부' 전유성의 흑백 영정이 KBS '개그콘서트' 무대에 홀로 놓였다.
KBS 간판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창립 멤버이자 후배들의 공연 무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써 온 고인이 마지막으로 오른 코미디 무대였다.
남희석, 이봉원, 정종철, 심현섭, 이영자 등 수십명의 후배 코미디언들은 조문객이 아닌 관객처럼 자리해 웃음이 아닌 눈물로 스승이자 선배, 형님인 고인을 떠나보냈다.
고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함께 큰절을 올리는 순간에는 침묵과 함께 울음소리만 홀 안에 울려 퍼졌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28일 오전 전유성의 노제(路祭)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거행됐다.
앞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이날 오전 7시 30분께 KBS에 도착한 전유성의 영정은 선후배 개그맨들이 일렬로 도열한 복도를 지나 공개홀로 들어섰다.
코미디언 이홍렬이 품에 안고 있던 고인의 영정을 '개그콘서트' 간판이 달린 텅 빈 무대 위에 내려놓자, 현장에서는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개그맨 박준형이 진행한 노제에서 엄영수, 심진화·김원효 부부, 송병철, 박영진, 박성광, 황현희, 김민경, 조세호 등은 영정을 향해 묵념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박준형은 "평생 우리 삶의 터전이 됐던, 우리의 직장을 만들어 주신 전유성 선배님께서 오르시는 마지막 개그콘서트 무대"라며 "선배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가 더 열심히 대한민국 국민께 웃음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배님께 큰 박수를 쳐 드리자"고 제안하자, 이들은 연신 눈물을 닦으면서도 고인을 향해 박수를 치며 "선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 안녕히 가세요"라고 외쳤다.
엄숙한 분위기였지만 몇몇 희극인들이 무대에 올라 현장에서는 눈물과 웃음이 섞여 나왔다.
코미디언 엄영수는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을 비롯해 기업체들도 이 장례식을 위해 애써주셨다"며 수십 개에 달하는 기업체 이름을 언급해 고인 앞에서 마지막 코미디를 선보였다.
최양락은 "형님께서 저희 부부의 연을 맺어주셨는데, 그 당시 제가 하고 있던 개그 코너의 유행어를 해 보겠다"며 자신의 유행어 "봉이야"를 외쳤다.
최양락의 아내인 개그우먼 팽현숙은 "전유성 아저씨 덕분에 멋진 최양락을 만나 한평생 잘살고 있다"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1분간 참았던 눈물을 참지 말고 신나게 울고 보내드리자"는 김학래 대한민국코미디언협회장의 제안에 수십명의 통곡이 이어지기도 했다.
노제에 앞서 이날 오전 6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에서도 유족과 수많은 코미디언 후배가 눈물 속에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과 긴 세월을 함께한 최양락이 방송, 공연, 저서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새로운 코미디를 선보인 전유성의 일생을 되짚었다.
그는 "이 땅에 개그맨이라는 호칭을 처음 만들었고 '개그콘서트'를 만든 분이었다"며 "따라 할 수 없는 열정으로 대한민국 최초 코미디학과를 개설하고 코미디 소극장 등을 통해 후진양성을 몸소 실천한 인정 많으신 분"이라고 기억했다.
추도사는 이홍렬과 김신영이 맡았다.
이홍렬은 "한국 코미디의 큰 별 고(故) 전유성 선배님을 보내드린다"며 "무대 위 혁신가이자 무대 뒤 스승이셨다. 웃음이 한 사회의 공기이고 문화임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그분이 만든 길 위에 서 있다"며 "남겨주신 웃음과 가르침은 우리의 가슴과 무대 위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기렸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병실에서 나흘을 보낸 김신영은 고인을 "나의 어른"이라고 칭하며 "병원에서의 4일이 40년 중에 가장 진실(된 시간)이었다"고 떠올렸다.
또 "제 코미디를 가장 먼저 인정해주신 분, 어린 제자도 존중해주시던 우리 교수님"이라며 "병원에서 제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 즐거웠다"고 한 따뜻한 마음을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눈물을 쏟았다.
코미디언 김정렬은 전유성이 생전 가장 좋아했다는 자신의 '숭구리당당' 퍼포먼스를 선보여 슬픔 속 웃음을 더하기도 했다.
이날 진행된 영결식 사회는 이수근이 맡았고, 기도는 개그맨 겸 목사인 표인봉이 올렸다.
전유성은 전형적인 코미디에서 벗어나 공연과 결합한 다양한 공개 무대를 만들어 후배들의 설 자리를 마련한 인물로 꼽힌다.
'개그콘서트'의 창립 멤버이자 기획자로 꼽히며, 코미디 전문극장인 철가방 극장을 열고,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개최에도 기여했다.
전유성은 코미디언들의 스승이라고 불릴 정도로 후배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사흘간 빈소에는 심형래, 유재석, 강호동, 김용만, 남희석, 이경실, 지석진, 신봉선, 이봉원, 이수근, 김경식, 이동우, 윤성호, 오나미, 허경환, 김지민 등 수많은 후배가 찾아와 조문했다. 배우 송승환, 가수 서수남, 박상철 등도 고인을 추모했다.
장지는 고인이 2018년부터 건강이 악화해 입원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전북 남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