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에도 한국 노동시장은 여전히 경직

입력 2025-09-14 16: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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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 보고서

27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총파업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한국 노동시장은 여전히 정규직에 편중된 채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주4.5일제 도입 및 정년 연장 논의가 불붙은 가운데, 미래 변화 대응을 위해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요 의제가 될 전망이다.

14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한국은행 고용연구팀 서동현 박사는 최근 상의 정책 제안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성장'에 기고한 글을 통해 "AI 기술 발전은 노동 본질과 인간 역할을 재정의하고 있다"며 "AI가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인간의 노동은 더욱 유연하고 간헐적이며 프로젝트 중심적 형태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한국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2010년대부터 70% 내외를 유지하며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의 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2007년 76.2%에서 2023년 70.4%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70%대를 유지했다.

같은 기간 단시간 근로자 비중은 4.3%에서 9.6%로 증가하며 여전히 한 자릿수에 그쳤다. 반면 네덜란드는 단시간 근로자 비율이 전체의 40%에 육박하고,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주요국도 20% 이상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정규직 중심의 고용 구조는 노동시장의 경직성뿐만 아니라 시장 내 격차 심화를 유발하고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한다. 한국의 단시간 근로는 여성과 청년층, 고령층 등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상당수가 비자발적으로 선택한 단시간 근로의 임금 수준이 전일제 근로보다 현저히 낮고 사회보험 가입률도 낮은 실정이다.

서 박사는 "현재 한국의 편중된 고용 형태와 낮은 유연성은 AI 기술 발전이 가져올 미래 노동 환경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적 제약 요인"이라며 "이는 다양한 인재의 잠재력을 막고, 기업의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른 정책적 전환의 방향으로는 ▷단시간 근로를 포함한 다양한 유연 근무 옵션의 확대 및 접근성 제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합리한 임금 및 처우 격차 해소 ▷모든 근로 형태를 포괄하는 강력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제시했다.

앞으로 인간이 단순 반복 업무보다 창의적·전략적 업무와 AI와의 협업을 통한 프로젝트 중심 업무에 집중하게 되면서 시간보다는 창출한 성과와 기여도를 중심으로 평가의 기준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고용 유연성 제고를 위해 정부도 유연 근무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 컨설팅 제공, 원격 근무 인프라 구축 지원, 성과 중심 인사관리 시스템 전환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근로자가 여러 기업과 일하는 멀티잡 형태 확산을 위해 기존 일대일 계약을 기본으로 한 법적 틀도 재정비해야 하고, AI 시대 적응력 강화를 위한 안식년 및 학습휴가제를 확산해야 한다.

아울러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구축 병행도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꼽힌다

서 박사는 "미래 AI 기술은 근로자 생산성을 대폭 높일 잠재력이 있다"며 "이런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사회안전망 정비를 통해 모든 근로자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속 가능한 노동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