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차오르는데도 구명조끼 벗어 건넸다...노인 살린 해경 마지막 모습

입력 2025-09-11 22:16:50 수정 2025-09-11 22: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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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사가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구조자에게 건네는 모습.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이 경사가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구조자에게 건네는 모습.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해양경찰관의 유족이 사고 당시 해경의 부실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고인은 구조 대상자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끝내 밀물에 휩쓸려 숨졌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소속 故 이재석 경사(34)는 11일 새벽 3시 30분쯤 인천 옹진군 영흥면 꽃섬 인근 갯벌에서 고립된 중국 국적의 70대 남성 A씨를 구조하던 중 실종됐다. 이 경사는 현장에 도착한 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구조 대상자에게 건넸고, 허리 높이까지 찬 바닷물 속에서도 무전을 보내고 드론을 향해 구조 신호를 보내는 등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A씨는 해경 헬기를 통해 구조됐지만, 이 경사는 밀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이후 실종된 지 6시간 만인 오전 9시 41분쯤 사고 지점에서 1.4km 떨어진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해경은 이 경사가 발을 다쳐 걷기 힘든 A씨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준 뒤, 헤엄을 치며 현장을 빠져 나오다 실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인천 동구의 한 장례식장에 갯벌 고립 노인에 구명조끼 벗어주고 숨진 해경 고(故) 이재석 경장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 경장은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서 70대 A씨가 고립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투입돼 구조 작업 중 실종됐다. 연합뉴스
11일 인천 동구의 한 장례식장에 갯벌 고립 노인에 구명조끼 벗어주고 숨진 해경 고(故) 이재석 경장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 경장은 이날 오전 3시 30분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서 70대 A씨가 고립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투입돼 구조 작업 중 실종됐다. 연합뉴스

이 경사의 유족 측은 이날 인천 동구의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시 당직자가 2명이었는데 왜 재석이만 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고 경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립자 구조 시 2인 1조가 원칙인데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도 '혼자 나간 건 처음 보는 일'이라며 의아해했다"고 전했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사건은 드론 업체가 갯벌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오전 2시 7분경 영흥파출소에 연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경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혼자 현장에 출동했고, 오전 3시쯤 발을 다쳐 고립돼 있던 A씨를 발견해 구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이 경사는 A씨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줬다. 이 경사가 구명조끼를 벗어 건네는 장면은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이후 9분 뒤 드론 업체가 "물이 많이 차 있다"며 지원 인력 투입을 요청했고, 1분 뒤에야 영흥파출소 소속 직원들이 현장에 출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이 부분을 문제 삼았다. 유족 측은 "물이 찼다는 얘기를 듣고도 즉시 추가 인력을 보냈더라면 재석이는 살아 있었을 것"이라며 "이건 절대 개인의 희생으로 치부해선 안 되는 사고"라고 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해경은 이 경사의 순직 경위와 출동 당시 대응의 적절성 등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해경 관계자는 "당시 상황 확인차 1명이 현장에 먼저 나간 건 맞다"며 "고립자를 발견한 후 추가 지원을 요청했는지 여부는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경은 11일 승진 심사위원회를 열고 그의 계급을 경사로 1계급 특진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