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후속 협상, 투자·농산물 개방 갈등 속 치열한 줄다리기

입력 2025-09-09 11: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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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동차 관세 인하 미루며 '선 행동' 요구
韓 실질 부담 최소화 시도

반도체·자동차 수출 호조 등과 함께 지난 7월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27개월째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7월 경상수지는 107억8천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6월보다 줄었지만, 7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27개월 연속 흑자 기록이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반도체·자동차 수출 호조 등과 함께 지난 7월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27개월째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7월 경상수지는 107억8천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6월보다 줄었지만, 7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27개월 연속 흑자 기록이다. 사진은 이날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놓고 미국 워싱턴D.C.에서 비공개 실무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관세율 인하와 맞물린 대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구체화, 자동차 관세 조정,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민감한 사안이 협상 테이블에 동시에 오르면서 신경전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9일 통상 당국 등에 따르면 한국 통상 실무 대표단은 최근 워싱턴D.C.를 방문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상무부 등과 실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은 지난달 25일 정상회담을 통해 큰 틀이 재확인됐지만, 세부 조건을 둘러싼 협의는 여전히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은 관세율 인하를 조건으로 3천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1천억달러 상당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으며, 현재 15% 상호관세가 적용 중이다.

그러나 핵심 쟁점인 자동차 관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양국은 자동차에 부과되는 25%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미국은 행정 절차를 이유로 이행을 미루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먼저 약속한 투자와 시장 개방에서 '눈에 보이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으로, 자동차 관세 인하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무협의의 최대 쟁점은 투자 패키지 구체화다. 한국은 조선 분야 1천500억달러, 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2천억달러를 투입하는 계획을 내놨다. 직접투자는 5% 수준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대출·보증을 통해 지원해 실질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지정한 분야가 아닌 자국이 정한 전략 산업에 대규모 지분 투자를 요구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투자 이익 배분도 충돌 지점이다. 미국은 투자 이익의 90%를 자국이 보유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반면 한국은 '90%를 미국에 재투자한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며 완화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투자금 회수 전에는 양국이 수익을 절반씩 나누되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구조로 합의한 전례가 있어 한국도 유사한 조건을 수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는 이미 내년 예산안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자본 확충을 포함해 1조9천억원을 배정하며 대미 투자 확대에 대비하는 등 행동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미국은 투자 대상 프로젝트 선정과 수익 구조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농축산물 개방 문제도 뜨거운 쟁점이다. 미국은 '과채류 수입 위생 협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국에 비관세 장벽 해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쌀과 소고기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강조하지만, 검역 절차가 빨라질 경우 사과·배·복숭아 등 미국산 과채류 수입이 사실상 확대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1993년 신청 이후 20년 넘게 지연된 사과 검역 문제를 두고 미국은 한국에 구체적 일정표 제시를 요구하며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디지털 분야 현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온라인 플랫폼법 도입, 구글·애플이 요구하는 정밀 지도 반출 문제 등이 실무 협의 과정에서 병행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선, 반도체 같은 산업 협력뿐 아니라 농축산물 문제 등 민감한 사안까지 정리하는 과정"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 통상 당국은 협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본국에 보고하고 있으며, 전날에는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주재하는 범부처 통상추진위 회의도 열렸다. 여 본부장은 "기업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되 민감한 부분에 대한 입장을 지키며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워싱턴D.C. 협의가 일정 수준 정리되면 장관급 협의를 통해 최종 결론을 도출할 전망이다. 이르면 이달 중 여 본부장이나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직접 미국을 찾아 협상을 매듭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