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버스에 두 손을 대고 뒤돌아선 채 발과 허리춤에 쇠사슬이 묶인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화제였다. 이 영상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이 지난 6일(현지시간) 단속 현장이라며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공개한 영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연행 버스 앞에 일렬로 서서 몸수색을 당하거나 손발·허리에 쇠사슬이 묶인 300여 명의 사람들이 한국인 근로자들로 확인되면서 한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영화에서도 멕시코 등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이 연행되는 장면만 봤지, '최우방국'이면서 '혈맹'(血盟) 관계로 여겨졌던 대한민국 국민을 이처럼 대한 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72년 동맹의 신뢰가 뒤흔들릴 수 있기에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물론 언론까지 '비자' 문제로 이 사태의 원인을 귀결하고 있다. 미 당국은 전문직 비자 발급에 까다롭고, 미국에선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공장 건설 등을 위해 한국 인력을 편법 동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간 한미 당국이 이런 상황을 묵인해 왔던 이유다.
이번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즉각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임은 틀림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때 3천500억달러 투자 펀드와 비자 문제를 패키지로 하지 않은 게 패착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한국 기업의 투자로 미국이 다시 위대해지고 있다는 것을 임기 내 가시적 성과로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비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그것(인재를 데려오는 일)을 신속하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썼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한국)이 말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문맥상 '합법적으로 인재를 데려올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등 비자 문제는 원만히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의 배경이 오로지 비자 문제만이냐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로 한국의 대기업이 미국에 투자해 공장을 짓던 한국인들을 장갑차·헬기에 쇠사슬까지 동원해 체포한 이 사건에 다른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일 "이번 단속은 한국 기업에 정치적 현실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이번 사태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선 외교적,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미국 전직 언론인 진 커밍스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간의 지난달 비공개 회담에서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고 전했다. 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을 번복한 이 대통령에게 화를 내고 회담을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 손잡고 미국 기업을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고도 한다.
물론 양국의 공식 발표가 없었기에 커밍스의 말이 '팩트'가 아닌 '워싱턴 정가에서 떠도는 전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을 3시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는 글과 윤석열 내란 특검을 향해 뱉은 '미친 잭 스미스' 발언 등은 이번 사태와 오버랩되면서 묘한 여운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