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서울취재본부 기자
'다들 뭐가 그리 불만이야? 총리 꼬나보는 기자들'.
지난 8월 19일 김민석 국무총리의 첫 기자간담회 이후 유튜브에는 위와 같은 제목의 '쇼츠'(짧은 동영상)가 올라왔다. 약 20초 분량의 영상에는 나를 포함해 기자 40여 명이 기다리던 공간에 김 총리가 들어오는 모습이 촬영돼 있었다. 김 총리는 앉아 있던 기자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목례로 화답했다.
이상할 것 없는 광경이었지만 영상 속 자막은 기자들을 '예의 없는 놈들'로 취급했다. '김민석 총리는 밝게 인사하는데 기자들은 왜?(표정이 안 좋나)' '왜 다들 화가 나 있는 거니? 기본적인 예의도 없고'와 같은 식이었다. 당시 총리실 출입 기자들은 마땅히 제 업무를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을 뿐 특별히 기분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김 총리가 입장한 후 배석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서로 눈빛을 교환한 모습은 쇼츠에서 빠졌다.
문제는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5천여 개의 댓글 대부분은 '대한민국 국무총리님이 인사하는데 저런 태도는 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배운 건가' '총리님 너무 그렇게 굽신굽신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더 깔보고 기자들이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지 너무 건방진 거 아닌가요' '정부는 너무 저자세로 나가지 말고 카리스마 있게 기자들이 꼼짝 못 하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등 기자들을 향한 욕으로 가득 찼다.
비슷한 상황은 최근 대통령실에서도 있었다.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OBS 기자가 이재명 대통령과 언론사 사장단의 비공개 만찬 일정에 대해 질의하자 강유정 대변인은 "비공개 행사를 생중계 중 노출하면 안 된다. 그 정도는 약속된 사안"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이에 기자가 "기자도 국민이다. 질문조차 못 하냐"고 맞섰으나 적절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당시 브리핑은 생중계 중이었고 이후 기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언론사 게시판에는 이 대통령 지지자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들이 앞장서서 기자의 질문을 막고, 태도를 공격한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로 돌아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의 가장 큰 역할은 권력을 감시하는 일이다. 언론은 질문을 통해 권력자들의 힘이 그들의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란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를 알고 있기에 권력자들은 항상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간혹 질문에 답하지 않는 행위 역시 그 자체로 답변이 된다.
하지만 기자를 향한 국민들의 과도한 비난이 소극적인 질문과 성의 없는 답변을 양성하고 있다. 권력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을 하기 위해선 개인 신상 정도쯤은 털릴 각오를 해야 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는 권력자는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피해 가면 된다.
질문을 향한 야유가 커질수록, 권력의 미소는 짙어지는 법이다. 우리는 숱한 역사에서 감시가 없는 권력이 어떻게 부패해 가는지 지켜봐 왔다. 기자의 날 선 질문이 '국민의 알권리'가 아닌 '개인적 호기심'으로 치부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물론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기자들의 부족함도 크다. 질문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모두 기자에게 있는 만큼 수준 이하 질문을 향한 적절한 비판은 필요하다. 다만 난데없는 비난은 금물이다.
지금껏 기삿거리는 권력자 혼자서 말하는 발표보단 백브리핑에서 이뤄지는 기자와의 문답에서 나왔다.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기자와 권력자가 치열한 문답을 해 갈 때 우리 사회는 한층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