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사진 대가 '로저 발렌'의 대규모 개인전, 대구 수성아트피아서

입력 2025-09-02 14:09:44 수정 2025-09-02 14:39:16

독창적인 세계관 '발레네스크' 구축
'새들의 수용소' 등 대표 시리즈 소개
컬러 신작 '영혼의 무대' 국내 첫 공개
9월 4일부터 11월 2일까지

© Roger Ballen, Spirits and Spaces, Evade, 2022, 91x91cm
© Roger Ballen, Spirits and Spaces, Evade, 2022, 91x91cm
© Roger Ballen, Roger The Rat, Lured, 2016, 78x102cm
© Roger Ballen, Roger The Rat, Lured, 2016, 78x102cm
© Roger Ballen, Asylum of the Birds, Unwind, 2013, 91x91cm
© Roger Ballen, Asylum of the Birds, Unwind, 2013, 91x91cm
로저 발렌. 수성아트피아 제공
로저 발렌. 수성아트피아 제공

세계 현대 사진예술의 최전선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로저 발렌(Roger Ballen)의 대규모 개인전 '마인드 스케이프(MIND SCAPE)'가 오는 4일부터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오는 18일 개막하는 국내 최대 사진 축제인 대구사진비엔날레와 나란히 펼쳐지며, 국내외 사진 및 미술계 전문가, 예술 애호가들에게 깊은 울림과 통찰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로저 발렌은 195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UC버클리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콜로라도광산대학에서 지질학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질학자로 아프리카 대륙을 탐사하던 그는 1970년대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정착, 그곳의 낙후된 공간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사회적 현실을 담았으나, 곧 인간 무의식의 심연과 심리적 불안, 존재론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탐색하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의 이름을 따 '발레네스크(Ballanesque)'라는 용어로 명명된 발렌 만의 작업세계는 작가 특유의 심리적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가 융합된 미학이다.

낡은 벽과 낙서, 폐허, 동물 사체, 가면과 인형 등 비현실적 요소들이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뒤엉키는데, 이를 연출된 세트에 배치해 심리극적 무대를 창조한다. 프로이트적 무의식과 억압된 감정의 시각화, 현실과 환상의 혼재, 그리고 존재의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이 미학은 사진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술적 성취로 평가 받는다.

© Roger Ballen, The Theatre of Apparitions, Guardians, 2011, 225x150cm
© Roger Ballen, The Theatre of Apparitions, Guardians, 2011, 225x150cm
© Roger Ballen, Spirits and Spaces, Visitors, 2020, 91x91cm
© Roger Ballen, Spirits and Spaces, Visitors, 2020, 91x91cm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 시리즈 4개를 엄선해 선보이는,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새들의 수용소(Asylum of the Birds)' 시리즈는 새와 인간, 폐허와 유령이 공존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존재와 죽음, 기억과 환상의 경계를 섬세하게 탐색한다. 내면 심리와 사후세계, 인간의 깊은 무의식을 유령 같은 형상과 초현실적 이미지로 표현해 관객에게 강렬한 심리적 체험을 선사한다.

'로저, 혼돈의 쥐(Roger the Rat)' 시리즈는 사회적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며 혼돈과 질서 사이에서 아웃사이더적 시선을 날카롭게 펼친다. 규범을 조롱하고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풍자적 이미지들이 발렌 특유의 기괴함과 결합해 독특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영혼의 무대(Spirits and Spaces)' 시리즈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컬러 신작이다. 발렌의 전통적 흑백 미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채로운 색채와 형상이 결합된 작품으로, 작가의 미학적 진화와 예술적 확장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전시장에서는 50여 년간 축적된 발렌의 미학적 혁신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영상, 포토북, 미공개 작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석재현 예술감독이 큐레이션을 맡았다. 석 감독은 미국에서 사진기자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으며, 뉴욕타임즈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Korean GEO 등에서 활약했다.

2006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과 한미사진미술관 '더 글로리어스 라이프(The Glorious Life)', 포토 브뤼셀 페스티벌 한국문화원 전시 기획을 비롯해 부산국제사진제 예술감독, 서울 충무아트센터 기후환경 사진전 'CCPP–더 글로리어스 월드(The GLORIOUS World)' 예술감독 등을 맡은 바 있다.

전시 기간 중 9월 9일에는 석 감독이 세계 사진예술의 동향과 발렌 예술의 위상을 조망하는 특별 강의를 진행한다. 9월 11일, 10월 16일, 10월 23일에는 예술평론가, 사진가,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아트 살롱(ART SALON): 발렌을 말하다'라는 테이블 토크를 통해 발렌의 작품 세계를 다각도로 해석하고 토론한다.

특히 9월 18일에는 관람객들이 실시간으로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로저 발렌과의 대화 마스터 토크(Master talk)'가 열린다.

수성아트피아 관계자는 "대구라는 지역이 단순히 전시 장소가 아닌, 세계 사진예술의 중심 무대가 된다는 것이 이 전시의 가장 큰 특별함"이라며 "지역 관객들에게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국내외 예술인과 평론가들에는 대구가 문화예술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임을 재확인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