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이호준] 진퇴 기로의 이시바를 응원한다

입력 2025-09-02 05:00:00

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얼마 전 일본에선 '추하고 기묘한 생물'이라는 외모 비하(卑下) 논란이 일었다.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를 두고 신흥 정당의 정치인이 한 발언이었다. 직접적으론 외모 비하지만 참·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데 대한 일종의 '놀림'이었다. 그런데 이 비하는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참패 책임에 대한 퇴진 압박에 시달리던 이시바는 이 발언 덕에 오히려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곧 사임을 공식화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이시바에 대한 동정론이 일면서다. 이는 이시바에게 버티기 동력이 됐고, 그 사이 10%대였던 지지율은 40% 안팎까지 올랐다.

그러나 다시 진퇴(進退)의 기로에 섰다. 이시바가 속한 자민당이 2일 의원총회를 열고 조기 총재 선거 찬반 여부를 묻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해서다. 이번 주 내 의사를 확인할 예정이라 8일쯤이면 총재 선거 실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소속 의원·당직자 등 342명 중 과반수가 찬성하면 차기 총재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이 경우 이시바의 퇴진은 사실상 확정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꼭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앞서 의견 수렴하기로 결정할 때만 해도 퇴진 확정 분위기였지만 외모 비하 발언에 이은 각국 정상과의 잇단 외교 일정이 이시바를 도왔다. '사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50%를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우리나라로 봐서도 이시바가 총리직을 유지하는 게 낫다. 대미 관계, 통상·안보 정세 급변 등 트럼프발(發) 파고를 함께 넘고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에서 힘을 모아야 할 상대로 이만한 인물이 없다. 우호적인 한국 인식에다 동반자적 태도 등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다. 이시바는 총리 취임 전부터 '친한(親韓) 노선' 정치인으로 알려졌다. 총리가 된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지난 6월 한국 대사관 주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리셉션' 땐 관방장관 등 내각 서열 1~4위와 방위상·합참의장·참모총장 등 국방 지휘 라인까지 모두 총출동시켰다. 일본 언론조차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한국에 대한 최상위 성의 표시이자 양국 간 미래 협력과 신뢰 의지에 대한 표시였다.

이시바는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몇 안 되는 총리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역사 문제에 있어 자성적인 입장을 보여 와 일본 내에서도 '반일적'이라고 공격을 받을 정도다. 지난 2019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문 땐 "일본이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문제들이 오늘날 여러 형태로 표면화하고 있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하고, 한일합병에 대해 일본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난달 15일 패전일 추도사에선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했고, 23일 한일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선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담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繼承)한다는 점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시바는 '이념'보다 '개념'의 정치인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는 일본 내 보기 드문 우파 정치인이고, 대중적 인기보다는 책임감을 강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소신과 원칙을 중요시하고 인간 됨됨이도 인상적이다. 며칠 뒤면 거취가 결정되지만, 퇴진 여부를 떠나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그의 '개념 정치'가 계속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