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
수석의 의미를 축경(縮景)이라고들 한다. 자연경관을 축소해 꾸민다는 그것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P 선생의 거실은 수석 천지였다. 마당이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크고 작은 돌을 쌓아 웅장한 산세나 심산계곡(深山溪谷)을 연출한 걸 석가산(石假山)이라고 한다. 실내에서 보는 건 그러니까 그 석가산의 단면을 공교히 다듬어 들여온 것이다. 대자연의 풍광을 마당 한쪽에 옮겨온 것도 놀랍지만 그걸 또 조붓한 탁상 위에 놓고 완상하기에 이르렀으니 이어령 선생이 언급한 '축소지향'의 세계를 생생히 체감한 셈이다.
수석은 크게 산수의 풍경을 드러내는 산수경석(山水景石), 갖가지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형상석(形象石), 짙은 색을 특징으로 하는 색채석(色彩石),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전하는 추상석(抽象石), 이 네 가지로 가름할 수 있으며 감식안에 따라선 평원석, 호피석, 무늬석, 폭포석, 절벽석, 동굴석 등으로 세분화된다. 좋은 수석은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형태, 질감, 색감이 그것이다. P 선생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고태미(古態美)를 들었다. 내 생각에 그것은 세월이 담긴 오묘한 아취와 여운이 감도는 것, 다시 말해 고색창연한 풍취가 깃든 것이다. P 선생 말마따나 인생의 묘리를 깨친 노인의 풍모에 빗댈 수도 있겠다. P 선생이 수집한 수석들을 새삼스레 둘러보았다. 이쪽의 궁상(窮狀)과 대비되는 유려한 표정들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수석 취미를 갖기가 쉽지 않겠다 싶었던 건 고태미를 위한 양석(養石) 방법을 듣고난 뒤였다. 돌의 표면에 이끼를 입히는 것. 물을 계속 주어 이른바 물때를 입히는 것. 손으로 쓰다듬거나 헝겊으로 문질러 주는 것 등등. 듣다 보니 자연을 감상하겠다면서 인공을 가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긴 나무나 도자기로 만든 받침대부터가 원초적 자연과는 거리가 멀다. 결정타는 선생이 나쁜 수석의 조건을 열거할 때였다. 깨어져 거칠거나 날카로운 면이 드러난 것, 그리고 흠집이 있거나 탁한 빛이 감도는 것….
사람의 한살이에서 청신하고 밝은 빛을 띠는 날은 얼마나 될까. 내 경우, 깨어져 흠이 생기거나 잿빛인 채 지내온 날들이 훨씬 많다. 또한 그것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것도 인연인지 가깝게 지내는 몇몇 작가 역시 매끈한 차돌의 감촉보다는 뚫리고 깨지고 긁혀 우둘투둘한 감촉의 이력을 지녔다. 그러니까 상처투성이인 돌의 세월을 굴러온.
P 선생의 집을 나와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잘났든 못났든 지금의 내 모습은 내 것이라는 것. 내가 디딘 지금 이곳이 나의 받침대라는 것.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국정 지지도 48.3%…50%선 '붕괴'
국민의힘 새 대표에 장동혁…"이재명 정권 끌어내리겠다"
송언석 "'文 혼밥외교' 뛰어넘는 홀대…한미정상회담, 역대급 참사"
장동혁 "尹면회 약속 지킬 것"…"당 분열 몰고 가는분들엔 결단 필요"
정청래 "국힘, 정상회담 평가절하 이해 안돼…나라 망치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