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정 많은 도시, 문턱은 살짝 높았다

입력 2025-10-18 20: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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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대구 출신이세요?"

얼마 전 공연이 끝난 뒤, 한 청중이 무대 뒤로 다가와 물었다. 그 짧은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대구시립교향악단에서 10년 넘게 연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대구에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대구 출신'은 아니다.

내가 아는 대구 사람들은 신중하고 정이 깊다. 처음엔 낯가림이 좀 있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밥은 먹었나"로 하루가 시작된다.

겉보기엔 말수가 적지만, 마음을 주기 시작하면 다 퍼주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엔 조금 서늘하더니, 막상 가까워지면 찜질방 온도다. 그 온도를 알기에 이해한다.

하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도, 그 따뜻함이 문턱이 되기도 한다.음악계는 인간적인 신뢰로 연결된 사회다. 그런데 그 신뢰의 출발점이 종종 '출신'일 때가 있다.

"어느 학교?" "누구 제자?" "어디 사람?" 그 대화만으로도 이미 '프롤로그'가 끝난다. 실력보다 그 답이 먼저 나올 때, 음악보다 사람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외지에서 대구로 와 예술의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은 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그 벽은 차가운 게 아니라, 익숙함에서 비롯되기에 더 단단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오래 두드려야 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벽 너머에는 언제나 따뜻한 마음이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 끝난 뒤 한 관객이 조용히 말했다.

"이런 무대를 지역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 문은 닫힌 게 아니라, 아직 초대장이 없었던 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역 예술가를 지원하자'는 구호는 많지만, 그 '지역'의 기준은 아직 과거에 머문다. 출신보다 지금 이곳에서 얼마나 꾸준히 창작하고 얼마나 이 도시의 문화에 기여하고 있는 가를 봐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예술가가 들어와 서로의 색깔을 섞을 때, 도시는 훨씬 더 아름답게 물든다. 그런 변화는 행정의 결정보다, 무대의 울림 속에서 먼저 시작된다.

낯선 이들의 음악이 익숙해지고, 새로운 시도가 '우리 것'이 되는 순간, 도시는 비로소 예술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이런 이야기가 언젠가 대구의 문화 행정과 예술 현장을 잇는 작은 생각의 씨앗이 되길 바란다. 나는 여전히 대구의 정을 믿는다. 이 도시는 느리지만 따뜻한 변화의 힘을 품고 있다. 출신보다 현재, 과거보다 지금의 무대를 바라볼 때 대구는 더 넓고, 더 열린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