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칼럼] 김구도 매국노가 되는 사문난적(斯文亂賊) 몰이의 광기

입력 2025-08-25 05:00:00

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했다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에 의해 '매국노'가 됐다. 그런 인식은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매국"이라는 것이다. 이어 정청래 대표는 1948년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建國)으로 보는 것은 "역사 내란"이라고 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이 건국이라는 것이다. 모두 사실과 동떨어진 '공상'이다.

광복이 '연합국의 선물'임은 김구부터 인정했다. 1945년 8월 15일 중국 시안(西安)에서 김구는 일본이 곧 항복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낙담했다. "내게는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한 일이 없기 때문에…."('백범일지') 좌익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박헌영은 1945년 8월 20일 조선공산당재건준비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채택한 이른바 '8월 테제'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조선의 해방은) 우리 민족의 주관적 투쟁적인 힘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 소련·영국·미국·중국 등 연합국 세력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좌우 공히 광복은 '연합국의 선물'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독립투쟁이 폄하되는 게 아니다. 광복에 대한 연합국의 기여와 독립투쟁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말살하는 상호 배제적 관계가 아니다. 김구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일본 지나(支那) 파견군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가 중국 국민혁명군 사령관 허잉친(何應欽)에게 항복문서를 전달한 1945년 9월 3일 김구는 임시정부 국무위원 주석(主席) 명의로 발표한 '국내외 동포에 고함'(이하 '고함')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열의 보귀(寶貴)한 열혈의 대가와 중·소·미·영 등 동맹군의 영용(英勇)한 성공이 없었으면 어찌 조국의 해방이 있을 수 있었으랴?"

1919년 임정 수립과 1948년 정부 수립 역시 상호 배제적이 아니다.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해서 임정 수립의 의미가 격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19년은 대한민국 건국의 시작, 1948년은 정부, 의회 등 국가의 요건을 완비하고 주권(主權)의 실효적 작동이 시작된 건국 과정의 종결이라는, 각기 독자적이면서 긴밀히 연결되는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김구와 임정은 임정 수립을 건국이라고 한 적이 없다. 광복도 건국의 전 단계라고 규정했다. "우리가 처한 현 단계는 건국강령에 명시한 바와 같이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는 과도적 계단(階段)이다. 다시 말하면 복국(復國)의 임무를 아직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건국의 초기로 들어가는 계단(階段)이다."('고함') 여기서 '건국강령'이란 1941년 11월 28일 발표된 임시정부 포고문 '대한민국 건국강령'(이하 '강령')이다. 여기서 김구는 복국과 건국의 단계론를 제시했다. 복국은 건국의 준비 단계를 말하는데 김구가 광복을 맞아 말하고자 했던 것은 광복은 복국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도 같은 판단이었다. "완전한 독립을 위한 허다한 투쟁은 아직 남아 있으며 새 국가 건설을 위한 중대한 과업은 우리의 앞에 놓여 있다."(1948년 8월 18일 건준의 '선언')

그러면 건국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강령'은 다음과 같이 정의(定義)한다. "적의 일체 통치 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국도(國都)를 전정(奠定)하고, 중앙정부와 중앙의회의 정치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며, 선거와 입법과 군사와 외교와 경제 등에 관한 국가의 정령(政令)이 자유로이 행사되어 삼균 제도의 강령과 정책을 국내에 시행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건국의 제1기라고 한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제헌의회를 구성하고, 그 의회가 5월 31일 개원하고, 7월 17일 헌법이 공포되고, 8월 15일 정부 수립과 함께 서울이 수도로 정해진 것은 이에 정확히 부합한다. 김구는 정부 수립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그의 정의에 따르면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은 영락없는 건국인 것이다.

김병기와 정청래의 주장대로라면 광복에 대한 연합국의 기여를 인정하고, 임정 수립을 건국이라고 하지 않은 김구도 '매국노' '역사 내란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다.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그 사문(斯文)은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투사들의 어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구 선생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