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그들만의 괴기한 드라마에 불과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혁신은 커녕 반탄(탄핵 반대)이 찬탄(탄핵 찬성)을 제압함으로써 국힘은 윤석열의 저주에서 벗어날 기회를 잃었다. 그 판국에 전한길 면접, 삿대질 연설, 속옷 농성까지 곁들였으니 공당의 존엄도 무너졌다.
전당대회 기간에 국힘 지지율이 더 추락한 것은 그나마 국민의 애정 어린 경고였다. 그럼에도 헌정과 보수의 가치를 절멸시킨 윤석열은 껴안고 찬탄은 숙청하겠다는 맹동이 기승을 부렸다. 모름지기 내년 지방선거 참패는 따 놓은 당상이고 다음 총선에서도 보수가 정상화되리라는 기약은 없다.
반탄과 유사한 반대 진영의 극단이 더불어민주당의 당권을 잡은 것은 그나마 국힘에게 위안거리다. 모독, 협박, 조롱의 독설로 저급한 정치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가 민주당 대표에 올랐다. 혹자는 이를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정쟁을 일삼으며 의회주의를 농락한 대가로 치부한다. 이 돌격대장에 대한 강성 지지층의 열혈단심이 대단히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언제까지 방탄의 공로를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금관을 쓴 사진을 올리자 "왕 노릇하냐, 이재명이 우습냐"는 비난을 뒤집어쓴 걸 보면 앞날이 척박하다. 목표를 이룬 강성 지지층은 분화되기 마련이고 또 다른 대안을 찾는 그들의 오랜 습성은 변함이 없다.
이러한 극단의 무리가 허세를 누리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배신자나 수박 같은 당내의 공적을 제조해왔기 때문이다. 당내 이견(異見) 집단을 단죄하는 프레임은 박근혜로부터 시작되었다.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10년 전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진박 감별사들이 날뛰며 보수정치를 말아먹었다. 그 결과 2016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TK당으로 몰락하며 연패의 서막을 열었다. 아울러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되었다.
정치적 폭력과 자해의 서사는 2024년에 더욱 선명해졌다. 배신자 역할만 유승민에서 한동훈으로 바뀌었고 결과는 극도로 참담했다. 22대 총선에서 국힘은 100석을 겨우 넘는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윤석열의 어리석은 계엄 놀음으로 두 번째 파면은 물론이고 멸문의 위기에 몰렸다. 그럼에도 기득권은 이견 집단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권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수박 깨기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민주당의 기득권은 개딸과 강성 유튜버 무리를 등에 업고 방탄의 험로를 헤쳐왔다. 숙청된 수박 정치인들은 거의 탈당하거나 몰락했다. 그리고 극적으로 윤석열이 권력을 헌납한 덕에 방탄세력은 한순간에 집권세력으로 천하를 움켜쥐었다. 요컨대 작금의 양극 정치는 윤석열과 개딸의 합작품이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의 두 번째 원인은 당원중심론이라는 전체주의적 이념이다.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므로 마땅히 당원이 당론을 결정하고 공직후보를 선출하는 것은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현대정치에서 이 주장은 절반만 맞다. 정당은 집권을 추구하는 정치조직으로 그 존립은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막대한 국고보조금과 공천권 같은 이익과 권한을 독점적으로 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정당은 특정 계급 계층을 벗어나 국민의 의사를 폭넓게 수용하는 포괄형 정당(catch-all party)으로 진화해왔다. 2000년대에 들어 양당이 경선에서 국민이 참여하는 개방형 제도를 도입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양당은 그동안 대선후보와 당 대표 경선에 50%에서 100%까지 국민 참여 비율을 확대했다. 반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양당은 공히 국민 참여 비율을 20%로 축소하는 폐쇄형 경선으로 퇴보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당원중심론이지만 이견 집단을 배제하려는 암수를 속이기 어렵다. 특히 국힘은 이 규칙을 통해 민심을 능멸하는 지도부를 선출했다.
즉 반탄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경선규칙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니 민심을 등진 무리가 개혁적인 미래를 창조할 리 없다. 오히려 당원중심론은 양당의 극단이 공생하는 카르텔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 전체주의 이념에서 벗어나 국민중심론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전체주의의 낙처(落處)는 공동체의 퇴행과 공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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