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쩍쩍 갈라진 집... 언젠가 무너질까 매일밤 선잠 [재난 이후, 끝나지 않은 고통(3)]

입력 2025-08-29 07:30:00 수정 2025-08-29 09:01:58

지진으로 균열 가득한 공동주택…장마엔 빗물이 떨어져
"무너질 것만 같은 집에 더 이상 손주도 부르지 못 해"
'또 지진 나면 어떡하나' 불안감에 비상 탈출 요령도 준비…"3층에서 뛰어내려야 합니다"
지진 트라우마로 공황장애까지 생겨, 야심 차게 계획한 장사도 포기해야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지 어느덧 8년. 땅을 뒤흔들며 생명을 위협했던 강진은 멈췄지만, 지진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들의 삶은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

벽에 균열이 가득한 아파트에 머무는 주민들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잠을 청한다. '언제 또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사회로 복귀하지 못한 채 고립된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 손주도 못 부릅니다"

지난달 16일 찾은 북구 흥해 한미장관맨션. 4개동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 단지는 지진 피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외벽 타일은 깨져 내부 콘크리트가 훤히 보였고, 떨어지는 잔해를 막기 위해 보행로에는 안전 그물망과 비계가 설치돼 있었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로 집안 곳곳에 발생한 누수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로 집안 곳곳에 발생한 누수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진이 발생하고도 이곳에서 거주하는 윤성일(76) 씨는 매일 밤 잠드는 것이 두렵다. 22평 남짓한 집 내부 벽지를 걷어내면 곳곳에 균열이 가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벽면 타일도 깨져 샤워기를 틀면 물이 뒤쪽 안방으로 스며든다. 침대와 베개가 축축하게 젖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비가 많이 올 때면 1초에 한 방울씩 빗물이 떨어질 정도로 집에 누수가 생겨요. 빗물이 외벽 사이로 계속 들어가면 내구성이 약해질 텐데 무너지지 않을지 걱정하면서 삽니다."

더욱 암울한 건 제대로 된 보수 공사도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미 균열이 간 아파트에 장비를 사용한 대규모 시공을 했다가 오히려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결국 윤 씨가 할 수 있는 건 임시방편에 가까운 시공이 최선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실리콘으로 외벽 틈을 메우며 버티고 있다.

"제가 2층에 사는데, 저희 집만 실리콘을 발라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빗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 3층부터 5층까지 다 막아야 누수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윤 씨가 거주하는 2층 위로 모두 빈집이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전 층 실리콘 시공 비용 50만원을 혼자서 부담해야 했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로 집 현관문이 뒤틀려 제대로 닫히지 않는 문을 힘겹게 여닫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로 집 현관문이 뒤틀려 제대로 닫히지 않는 문을 힘겹게 여닫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평온했던 일상도 지진을 겪으면서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후 8시에 눈을 붙여 9시간의 숙면을 취했지만, 지금은 오전 2~3시면 눈이 떠진다. '지진이 또 발생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제 눈으로 직접 땅이 흔들리고 차가 넘어질 듯한 장면을 봤어요. 자다가 하루에 3~4번은 바닥이 파도처럼 울렁이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내는 빗소리만 들어도 잠을 못 자서 정신과 약까지 먹고 있습니다."

한때는 손녀들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이며 소소한 행복도 누릴 줄 아는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붕괴 위험이 도사리는 이곳에 데려올 수도 없다.

"우리도 불안한 이 집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어떻게 들이겠어요. 명절에 오면 외식 한 번 하고 돌려보내고 있어요."

◆ "또 지진이 나면…3층에서 뛰어내리렵니다"

한미장관맨션에서 약 250m를 걸으면 채희수(66·가명) 씨가 거주하는 공동주택이 나온다. 그는 지진 이후 거실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진으로 거실 바닥이 움푹 꺼졌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그 깊이가 더 심해지고, 8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걸을 때마다 '쿵쾅'거리는 소리도 확연히 커졌죠. 아내는 위험하다며 거실 한가운데를 피해서 가장자리로만 다니라고 늘 당부합니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채희수(66, 가명) 씨가 집 내부 곳곳이 내려 앉아 수평계로 바닥의 기울어짐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채희수(66, 가명) 씨가 집 내부 곳곳이 내려 앉아 수평계로 바닥의 기울어짐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채 씨의 집을 수평기로 측정해 본 결과, 거실과 방 3곳 모두 바닥이 왼쪽으로 기운 모습이었다. 막내아들 방은 책장이 침대 쪽으로 쏠려 있어 채 씨는 매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남은 선택지는 대비하는 것뿐이다. 채 씨는 집에 하중이 가지 않도록 대리석 식탁과 테이블을 모두 가벼운 나무 소재로 교체했다. 돌로 된 소파도 패브릭 소재로 바꿔야만 했다.

무거운 가전제품은 꿈도 꾸지 못한다. 3대 효자 가전으로 불리는 건조기도 집 균열에 무리를 줄까 봐 끝내 사지 않았다. TV 선반 역시 바닥에 두지 않고 실리콘으로 벽에 부착해 사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을 집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바닥에 두지 않아요."

'한 번 지진이 났던 곳에 또 안 난다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일상을 잠식했다. 채 씨는 자녀들의 돌반지와 귀중품, 가족사진, 통장 등을 한 곳에 모아두었다. 유사시 빠르게 챙겨나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채희수(66, 가명)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채희수(66, 가명)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채 씨의 집은 3층. 지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온 가족은 비상 탈출 요령도 미리 정해두었다.

"지진이 나면 먼저 이불을 밖으로 던지고, 베개를 꼭 안은 채 남은 이불로 몸을 감싸고 뛰어내리기로 했어요. 실제로 그럴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지진을 겪고 나니 저희는 늘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여력은 없다. 7천만원을 호가했던 집값은 지진 이후 5천만원으로 떨어졌다.

"옆동에 같은 평수가 5천만원에 내놔도 안 팔리고 있습니다. 저희보다 조금 작은 평수는 2천만원까지 내려앉았어요. 지진 피해가 있는 집에 누가 살려고 오겠습니까?"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채희수(66, 가명)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채희수(66, 가명)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채 씨를 비롯해 주민들은 전파 판정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바람뿐이다. 앞서 포항시는 전파 판정을 받은 공동주택들을 매입하고 보건소와 트라우마센터 등을 지었다.

"저는 언젠가 이 집이 무너질 거라 봐요.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더 무서운 겁니다."

◆ 트라우마로 일상이 무너졌다

같은 달 14일 찾은 북구 흥해읍 '포항트라우마센터'. 지진을 경험한 최호연(46) 씨와 김윤자(63) 씨는 매일같이 이곳을 찾고 있다. 지진으로 생긴 불안과 공포심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다.

최 씨는 "하루 일과를 트라우마센터에서 시작한다. 재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센터의 민감 소실 장비를 이용하면 몸에 쌓인 불안감이 조금은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2019년 개소 이후 등록 회원은 3천892명이다. 지난해 실태조사 결과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고위험군은 201명으로 전체의 5.16% 규모다.

지난달 14일 찾은 포항 북구 흥해읍
지난달 14일 찾은 포항 북구 흥해읍 '포항트라우마센터'. 지진을 경험한 최호연(46) 씨는 매일 트라우마센터를 찾고 있다. 사진은 최 씨가 호흡법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는 모습. 임재환 기자

지진 당일 집을 알아보던 최 씨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지진이 났을 때 무너질 듯한 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차량들의 경적음 소리에 깜짝 놀라고 휴대폰 진동에도 심장이 철렁인다"고 말했다.

2018년 4월부터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최 씨는 하루에 3번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있다. 언제 발작이 올지 몰라 운전대도 잡지 못하게 되면서, 야심 차게 계획한 야채·과일 장사도 수포가 되었다.

긍정적이었던 김 씨 또한 지진을 경험하면서 평온을 잃었다. 지진에 대한 악몽이 날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김 씨는 "하루는 지진이 발생해 대피하는 꿈을 꿨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식탁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며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눈물을 쏟아냈다.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017년 포항 지진의 여파로 흥해읍의 한 아파트 건물 곳곳에 갈라짐 현상과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해당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윤성일(76) 씨가 지진 피해 흔적을 가리키며 취재진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이런 가운데 대구고법은 지난 5월 12일 포항시민 49만여명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지진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책사업인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이라는 점은 인정되나, 과실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주민 1인당 최대 300만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도 '0원'으로 뒤집혔다.

포항시 관계자는 "대법원 상고와 관련해서 대법관 출신의 변호인을 선임해서 대응 중"이라며 "항소심 판결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적극 대응하면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