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떨어진 캐리어에 깔려 치료비만 2700만원…가해자는 "경미한 사고"

입력 2025-08-08 11:44:21 수정 2025-08-08 11:59:26

서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여행용 캐리어 2개가 굴러떨어지며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서 있던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JTBC 사건반장
서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여행용 캐리어 2개가 굴러떨어지며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서 있던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JTBC 사건반장

서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여행용 캐리어 2개가 굴러떨어지며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서 있던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피해를 입은 여성은 치료와 재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캐리어를 놓친 당사자는 "경미한 사고였다"고 주장했다.

최근 JTBC '사건반장'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해 6월 27일 오후 8시 19분쯤 서울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에서 발생했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남자친구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지하철로 귀가하려던 피해자 A 씨는 개화역 방향 승강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던 중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A씨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 중간쯤 내려가던 순간 위쪽에서 굴러떨어진 여행용 캐리어 두 개에 등을 맞고 계단 위로 넘어졌다.

당시 캐리어를 에스컬레이터에 올린 사람은 한 중년 여성이었다. 사고 장면이 담긴 CCTV를 보면, 이 여성은 2개의 대형 캐리어를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실은 뒤, 나머지 1개를 올리려던 중 앞서 올려진 캐리어들이 굴러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피할 겨를도 없이 굴러 떨어지는 캐리어에 맞고 넘어진 A씨는 계단 위로 주저앉은 채 에스컬레이터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고 한다.

서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여행용 캐리어 2개가 굴러떨어지며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서 있던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JTBC 사건반장
서울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여행용 캐리어 2개가 굴러떨어지며 에스컬레이터 아래에 서 있던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JTBC 사건반장

A 씨는 "뒤에서 갑자기 '도르르' 소리가 나서 뒤돌아봤는데 캐리어가 정말 크게 보이면서 그냥 '오! 온다' 하고 맞았다"며 "2초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하나가 아니고 두 개가 같이 떨어지니까 피할 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끄럼틀 타듯 앉아서 쿵쿵거리며 내려왔다, 너무 아파서 일어설 수 없었고 움직이지도 못했다"며 "(사고 후유증으로) 캐리어를 끌고 누가 지나가면 얼음이 되어서 아무것도 못한다. 제자리에서 5분 이상은 서 있어야 진정이 된다"고 호소했다.

A 씨는 사고 직후 심한 통증과 찰과상으로 인해 스스로 움직이지 못했으며,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대신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크게 다친 상황에서도 정신 차리고 이 캐리어 크기와 무게를 확인해야 한다고 경찰에 부탁했다고 한다. 해당 캐리어는 크기와 무게 모두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허벅지에 손바닥만 한 찰과상을 입었고, 미끄러지듯 계단 아래로 밀려가며 전신에 상처를 입었다. A씨는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았고, 온몸의 타박상을 비롯해 목과 허리 디스크 손상, 턱관절 통증, 양다리 인대 파열 등이 진단됐다. 2개월 이상 병원에 입원하며 치료를 받으면서 직장도 잃고 말았다.

가해 여성은 사고 현장을 찾아온 A씨의 남자친구에게 "제가 잘못한 것 같다. 딸 같은 사람한테 미안하니까 보상해 줄 수 있다"고 말했으나, 이후 태도가 바뀌었다. A씨가 변호사를 통해 형사 합의를 제안하자, 가해 여성은 "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실수한 건데 보험사 통해서 보상받으면 될 일이다. 내 돈은 안 쓰겠다"고 말했다. A씨는 보험을 통해 약 700만 원을 수령했다. 하지만 실제 들어간 치료비는 27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 사람간 형사 합의가 결렬되며 가해 여성에 대해서는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처벌로 이어졌다. 가해 여성은 벌금 1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A 씨는 현재 해당 여성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는 "여성의 실수로 지난 1년이 다 망가졌다"며 "상해진단서에서 전치 8주 이상, 정신과 진료도 4주 이상 필요하다고 나왔다. 골절이 없던 건 다행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고 이전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고도 했다. A 씨는 "신체적으로도 '운동해서 더 건강해지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사고 후 동작에 제한이 많아졌다"며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절망스럽다. 제가 이제 40세인데 갑자기 50~60대 몸 상태로 살아가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했다.

가해 여성은 이 매체를 통해 "실수로 벌어진 일에 대해 굉장히 미안하지만, A씨가 걷지 못한 것도 아니고 내가 보기엔 경미한 사고였는데 과도하게 확대된 것 같아 유감"이라며 "저 역시 사고 이후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