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이연정] 대구문예진흥원 사태를 바라보며

입력 2025-08-07 15:50:14 수정 2025-08-07 18:01:51

이연정 문화부 기자

이연정 문화부 기자
이연정 문화부 기자

어쩌면 예견된, 총체적 난국이다. 약 3년 전 기자는 '10월 1일 괜찮을까…대구문화예술진흥원 우려 속 출범'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대구문화재단과 관광재단을 비롯해 대구미술관, 문화예술회관, 콘서트하우스, 오페라하우스, 3개 공립박물관 등을 합한 이 거대 조직은 당시 시장의 말 한마디에 고작 3개월 만에 부랴부랴 만들어졌다.

기사 제목처럼 당장 설립을 앞두고 모든 것이 우려투성이였다. 왜 통폐합하는지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직급과 임금 일원화에 대한 기준도 없었으며, 심지어 사무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 조직을 이끌어 나가야 할 원장도 선임하지 못한 채 출발한, 그야말로 누구도 키를 쥐지 못한 채 지도 없이 망망대해에 던져진 한 척의 배였다.

누군가는 이 배의 종착지가 과연 어디일지를, 누군가는 기관별로 전문성이 약화될 것을 걱정했지만 그건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진짜 문제는 내부에서 생겨났다. 혼란한 통폐합 과정을 틈타 은밀하고 치밀하게 형성된 카르텔과 그로 인한 직원 간 갈등, 방만한 운영과 의미 없는 자체 감사 등 '대구시의 문화예술 컨트롤타워'라는 이름이 무색할 행태들이 만연하게 나타났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지속되던 문제들은 이제 주머니 속 송곳처럼 도무지 감춰지지 않는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녹취와 감시가 일상화하고 있을 정도라는 얘기가 나오고, 이 같은 갈등의 불똥이 최근 외부 기관에까지 튀며 논란이 일었다.

또한 실질적인 기득권을 쥔 간부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진흥원 운영을 좌지우지하거나, 그들에게 잘 보이려 '줄서기' 하는 기형적인 문화가 잇따르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불신과 반목으로 변하고 있다. 카르텔 밖에서 부당함을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온 직원들의 박탈감과 허무함까지 더해져 진흥원은 지금 난파선 수준이다.

최근 이 같은 문제들을 모아 진흥원 관련 기사를 시리즈로 보도하자 '왜 갑자기 급발진하냐'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갑자기 불거진 문제가 아니고, 갑자기 기사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진흥원은 꽤 오래전부터 내부 이곳저곳에서 들리던 부정적인 얘기들로 이미 지역 문화계의 신뢰를 잃고 있었다. '터질 게 터졌다'는 얘기가 들리고, 취재 과정과 보도 이후 제보도 쏟아졌다.

씁쓸함이 가시질 않는다. 다시 한번 살펴보니 모두 간부급에서 비롯된 문제들이어서다. 적어도 내게 부서장이란, 사회 초년병 때부터 "나만 믿고 취재만 열심히 하라"며 바른 방향을 향해 든든한 길잡이가 돼 준 이들이었다. 그렇게 조직에서 중심을 잡고 모범을 보이며 책임을 짊어져야 할 본래의 역할과 무게는 어디 가고 권력 행사를 위한 가벼운 자리가 돼 버렸는지 안타까움이 크다.

미술 담당으로서 많은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가 곧 작품이 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직업을 가진 누구나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성실함, 책임감과 같은 직업윤리가 모여 조직의 분위기와 성과를 만든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문제도 결국 이 당연한 직업윤리의 상실에서부터 시작됐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흥원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 비대한 조직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지역 예술인을 뒷받침하고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에 힘쓰는 본래의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대구시는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환부를 도려내야 새 살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