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타이거
SF 사이드 지음/ 책읽는곰 펴냄
런던의 그늘진 골목에서 어깨에 화살이 꽂힌 채 피를 흘리는 거대한 호랑이와 마주한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을 느끼지만 결국 호랑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후 이 폐허 속에 숨은 호랑이는 두 눈을 번뜩이며 소년을 구한다.
'SF 사이드'가 쓰고 '데이브 매킨'이 그린 동화 '타이거(Tyger)'의 주인공 아담 알람브라는 이민자 출신의 소년이다. 가족이 운영하는 옷가게의 배달을 도맡으며 살아가지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경계와 혐오, 검문과 모욕을 일상처럼 겪는다.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노예제와 인종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대체 역사 속 런던이다.
낮게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 하지만 그런 아담 앞에 갑작스레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신적인 존재 '타이거'가 등장한다. 타이거는 초현실적인 힘을 지닌 불멸의 존재이나 상처를 입고 쫓기고 있다. 아담은 그런 타이거를 도우며 그와 비밀스러운 유대를 맺고 세상과 맞선다.
이 동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책 속 세계가 낯설면서도 너무나도 익숙하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이런 세계관을 통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암시한다.
이 동화는 어린이 책으로 출간됐지만 호랑이와 소수자 아이들이 펼치는 모험담을 통해 어른들이 외면해온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불의 앞에서 침묵한 적은 없었는지, 두려움을 이유로 피한 적은 없었는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았는 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이 불편한 사실들은 한 질문을 통해 이어진다. "더 나은 세상은 어디서 시작될 수 있을까?"
동화 속에서 타이거는 아담에게 "세상은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품은 '가능성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식의 힘, 상상의 힘, 창조의 힘을 깨달아야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 힘은 처음부터 우리 모두에게 있다. "난 그냥 꼬마인걸! 나한테 무슨 힘이 있다는 거야?"라고 묻는 아담에게 타이거는 "네가 원한다면, 나를 돕기에 충분한 힘이지"라고 말한다. 이 단순한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한다. 약하고 작은 존재에게도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믿음,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지난 2023년 타이거는 영국 도서상(The British Book Awards) 어린이 소설 부문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다가올 시대의 고전"이라는 대중의 찬사를 얻었다. 이는 단순한 아동 모험소설을 넘어, 서사적 깊이와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작품만이 얻을 수 있는 성취였다. 사회적 억압과 인종차별, 제국주의라는 복잡한 주제를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시적인 문장으로 녹여 내며 어린이문학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다시 썼다.
그리고 데이브 매킨의 흑백 일러스트 역시 이 책의 또 다른 서사다. 콜라주와 드로잉, 사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그의 그림은 불안한 세계의 공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의 그림은 한 컷의 이미지로도 긴 여운을 남긴다. 그림책과 그래픽노블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의 시각적 감동만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 동화는 판타지와 현실, 모험과 철학, 감각과 사유가 밀도 높게 엮인 작품이다. 작가 SF 사이드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The Tyger'에서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완성했다. 세상을 창조한 존재에게 "어찌 이런 무서운 아름다움을 만들었느냐"고 묻는 그 시처럼, 이 책도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을 무너뜨렸고,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348쪽, 1만8천원.

댓글 많은 뉴스
장동혁 "계엄 유발한 정청래, 내란교사범·내란주범"
김계리 "尹, 당뇨·경동맥협착·심장병…치료 안받으면 실명 위험도"
"땡전 뉴스 듣고 싶나"…野 신동욱, 7시간 반 '필리버스터'
[매일희평] 책임지지 않는 무한 리더십
홍준표 "尹보다 김건희 여사가 국민에 충격 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