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노곡동이 빗물에 잠긴 후로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노곡동은 점점 제 모습을 찾고 있다. 진흙이 가득 쌓였던 도로는 말끔해졌고, 밖으로 흘러나왔던 세간은 깨끗하게 말랐다. 물살에 휩쓸려 갔던 길고양이 급식소도 새로 자리 잡으면서, 고양이가 옹기종기 모여 사료를 먹는 평화로운 풍경이 돌아왔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물난리가 난 곳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
이대로 없던 일로 치부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평화로운 풍경 한편에는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물살에 정신없이 도망쳐야 했던 기억은 상처가 됐다. 주민들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느냐"고 묻는 일밖에 할 수 없다.
이제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조목조목 따져 봐야 할 때다. 지난 2010년 수난을 겪은 후 다시는 잠기게 하지 않겠다며 조치를 마쳤음에도, 또 한 번 사고가 발생한 이유가 뭘까. 대구시가 조사위원회를 꾸려 잘잘못을 가리고 있는 가운데, 원인을 추측하는 기사가 끊이질 않고 쏟아지고 있다. '쏟아진 토사 탓에 제진기가 멈췄다' '금호강으로 연결된 수문 중 하나가 닫힌 탓에 물이 제때 빠지질 않았다'와 같은 분석이 나왔다.
어떤 실수가 노곡동을 잠기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모두 자연이 아닌 '사람'의 영향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점이다. 미숙한 담당자들의 실수가 겹치면서, 시간당 최대 48.5㎜에 불과한 비에 마을이 잠기게 됐다.
왜 미숙한 관리자가 계속 양산될까. 취재 중 만난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잦은 인사이동'을 원인으로 꼽았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재난의 양상이 달라 대처 방식도 조금씩 다른데, 1년을 겨우 넘긴 뒤 자리를 뜨다 보니 미숙한 대처가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담당자가 바뀐 후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거치거나, 대처 방식을 교육할 만한 환경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침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수문이 열려 있어 마을로 내려가는 물이 불었다'는 내용을 취재하던 중, 담당자들의 치명적 실수를 발견했다. 노곡동 빗물 펌프장 측은 북구청에 수문을 닫아 달라고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건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답변이었다.
기존 담당자가 있었더라면, 곧바로 수문을 닫아 피해를 최소화했을 것이다. 연락이 오기 전 이미 여름철 우기에는 수문 상태와 노곡동의 침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한발 빠르게 수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업무 담당자를 '잠시 머무르는 사람'이 아닌 방재 전문가로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했지만, 공염불에 그쳐 왔다. 방재 업무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방재안전직 공무원을 신설해 전문 인력을 기르고 업무 부담을 덜겠다고 약속했다. 약속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난 2024년 기준 대구시 내 전문 공무원은 고작 15명이다. 결국 여전히 업무 연관성이 있는 주무 부서에서 업무를 도맡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곡동에 98억원을 들여 침수 방지 시설을 세웠지만, 정작 이를 다루는 담당자의 실수가 시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어 새 시설을 짓는 것보다, 담당자의 역량을 키우는 길을 찾는 게 필요하다. 불어난 빗물에 평화로운 삶을 흘려보낸 주민들을 위해, 대구시가 올바른 후속 조치를 내놓길 바란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60%선 붕괴…20대 부정 평가 높아
진성준 제명 국회청원 등장…대주주 양도세 기준 하향 반대 청원은 벌써 국회행
농식품장관 "쌀·소고기 추가 개방 없어…발표한 내용 그대로"
김건희특검, 尹 체포영장 집행 무산…"완강 거부"
진성준 "주식시장 안무너진다"…'대주주 기준' 재검토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