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 참사 "조종사 과실" 조사결과에 유족·조종사 반발

입력 2025-08-03 22:41:44

제주항공 사고, 사조위 자료 유출로 조종사 실수 부각
민간조종사협회 "조종사 실수, 관련 데이터 제시해 입증해야"
사조위 "종합분석 해봐야" vs 유가족 "책임전가"

26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경찰, 국과수 관계자들과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대표단이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오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경찰, 국과수 관계자들과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대표단이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연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사조위)가 '조종사 과실' 가능성을 담은 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유가족과 조종사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3일 유가족과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조종사협회) 등에 따르면 사조위는 사고기 잔해 분석을 통해 조종사가 착륙 직전 랜딩기어(착륙바퀴)와 보조날개(플랩) 등을 작동하지 않은 채 동체 착륙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조종석 앞쪽 랜딩기어 손잡이가 'OFF'(꺼짐) 위치에 그대로 있었고, 조종석 뒤편 수동 작동 장치도 사용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착륙 때 사용하는 보조날개와 속도를 줄이는 스피드브레이크 손잡이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사조위는 또 조종사가 새떼 충돌 직후 "오른쪽 엔진을 끄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손상이 적은 왼쪽 엔진을 껐다고 분석했다. 이 탓에 두 엔진 모두 전력 생산이 불가능해져 사고기에 '셧다운'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끄려고 했던 오른쪽 엔진은 일부 작동을 계속했다. 동체 착륙 당시 저압 터빈이 상당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고, 이 덕분에 공항에서 4∼5㎞ 떨어진 곳까지 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조위의 분석이다.

또한 사조위는 조종사가 매뉴얼에 따라 보조동력장치(APU) 시동을 걸어야 했지만 이를 수행하지 않았고, 오른쪽 엔진전력장치(IDG)를 직접 끈 것으로 봤다.

하지만 유가족과 조종사협회는 이 같은 조사 결과가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종사협회 관계자는 "APU 작동은 비상조치핸드북(QRH)을 보고 하는 것이지 즉각 조치하는 메모리 아이템(암기 목록)이 아니다"며 "새 충돌 후 블랙박스가 꺼지기까지 24초 정도로 상황이 급박해 QRH를 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조종사가 엔진을 껐다면 당시 엔진 상태 자료를 공개해야 잘못인지 판단할 수 있다"며 "그러한 데이터 없이 조종사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왼쪽 엔진도 이른바 '서지 현상'(순간적 고전압)이 있었고 연소실 압력이 떨어지는 등 심각한 손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족 측도 "처음 사고 원인은 철새였고, 설령 조종사 실수가 있었다 해도 사망사고가 크게 일어난 이유는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둔덕 때문"이라며 "국토부 잘못은 빼고 조종사 과실로만 몰아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앞선 19일 사조위는 엔진 정밀조사 결과를 발표하려다 유가족 항의로 발표를 전격 취소(관련 기사 제주항공 참사 엔진조사 발표 무산…유족 격앙 "신뢰못해")했다. 당시 김유진 유가족 대표는 "179명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며 "현재도 전국 6개 공항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 설치돼 있어 오늘이라도 '제2의 제주항공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후 사조위가 '조종사 실수'를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사실이 알려지자 조종사협회는 21일 성명을 통해 "사조위가 사고의 복합성과 전체 시스템 실패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조종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며 "왜곡된 결론"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사조위 측은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며 "향후 종합적인 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조사 결과를 발표할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사조위 사고 원인 조사가 일부 공개되면서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됐다"며 "이러한 의심을 없애려면 유가족이나 조종사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포함해 종합적인 사고 조사 발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일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3층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이 취소된 후 김유진 유가족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3층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엔진 정밀조사 결과 브리핑이 취소된 후 김유진 유가족 대표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