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교과서 사실상 폐기·지역화폐 국비 지원…巨與 입법 독주

입력 2025-07-10 17:40:51 수정 2025-07-10 20:40:26

교육위서 與 주도로 AI교과서 교육자료 변경 법안 처리
與, 행안위서도 지역화폐 국가 재정 지원법 강행
농해수위는 여야 합의로 '농업 4법' 중 2건 통과

9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서범수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9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소속 서범수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에서 여당으로 위치를 바꾼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회 독주 드라이브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인공지능(AI)교과서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법안과 지역화폐 발생 시 국가 재정 지원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야당 반대에도 강행 처리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이 행사됐던 '농업 4법' 중 2건은 야당의 호소 속에 여야 합의로 수정 의결돼 간신히 협치의 씨앗을 남겼다.

◆AI교과서 '교육자료'로…지역화폐 국비 지원 '의무화'

10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AI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표결 처리됐다. 이 법안은 앞서 민주당이 야당일 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 재표결을 거쳐 폐기된 바 있다.

백승아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은 AI교과서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많은 돈과 예산, 노력이 들어갔음에도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교과서를 만들었기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훌륭한 교과서라면 왜 학생 접속률이 10%밖에 안 되고 왜 현장 교사들이 사용하지 않겠느냐. 여론수렴과 현장 소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AI교과서 폐기 선언"이라며 반발했으나 수에서 밀리는 탓에 역부족이었다. 서지영 의원은 "AI를 활용한 학습으로 전세계 시장이 재편되는 상황인데도 교육 현장에서 선생님 지휘와 감독하에 일어날 여러 목표를 우리 손으로 중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대식 의원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그동안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온 정책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니 참담하다"고 했다.

이러한 풍경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반복됐다. 민주당은 지역화폐 발행과 관련해 국가 재정 지원을 의무화한 '지역화폐법'을 야당 의원 반대에도 표결 처리했다.

국가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도록 하고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 5년마다 기본 계획을 수립, 관련 실태조사를 하도록 했다. 이 법안 역시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을 거쳐 폐기 됐었다.

모경종 민주당 의원은 "지역화폐법은 지역에 있는 소상공인들을 살리고 지역 골목상권을 살릴 수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행안위 야당 간사인 서범수 의원은 "지금 국가 재정이 많이 어렵고 세수 부족이 예상되는데도 지역사랑상품권 국고 지원을 의무로 못 박았다"며 "협치와 토론이라는 국회 관행을 붕괴시키고 숫자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처리한 부분에 대해 대단히 유감"이라고 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정희용 의원(고령성주칠곡), 같은 당 강명구 의원(구미을)이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의 농해수위 법안소위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희용 의원실 제공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간사 정희용 의원(고령성주칠곡), 같은 당 강명구 의원(구미을)이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의 농해수위 법안소위 통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희용 의원실 제공

◆'농업 4법' 중 2건은 여야 합의 처리

이날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그나마 합의의 정신이 살아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농업 4법'(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 중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보험법 2건이 여야 합의로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은 5년마다 농어업 재해 대책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은 병충해 등을 농어업 재해보험 대상에 포함하도록 했다.

농해수위 야당 간사인 정희용 의원(고령성주칠곡)과 강명구 의원(구미을)은 소위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연중화·대형화되면서 더 어려워진 농어업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에 여야와 정부가 심도 있는 논의·조율을 거쳤다"고 했다.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대해서는 "농어가 보험가입 여부를 고려해 지원 수준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농어업재해보험법의 경우 정부 기준에 재해에 한해 할증 제한이 적용되도록 수정, 농어가 부담은 완화하고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날 양곡관리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도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시간 관계상 심사되지 못했다. 정희용·강명구 의원은 "현장 목소리와 전문가 의견을 지속해서 반영해 기존 법안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의원실 제공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이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의원실 제공

◆마을기업 육성법 행안위 통과 '눈길'

이처럼 여야가 각종 쟁점 법안 처리에 힘을 쏟는 가운데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의미 있는 법안의 처리도 이뤄졌다. 이달희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마을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마을기업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 지원 근거를 명확히 하고 마을기업의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마을기업 종합계획 수립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정부 차원의 마을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마을의 각종 자원을 활용해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통해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마을기업은 2009년 희망근로 프로젝트에 이어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의 하나로 2011년 시작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17개 시도에서 약 1천800개 마을기업이 운영 중이며 매출액은 2012년 1천3억원에서 지난해 3천90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상용 근로자도 같은 기간 2천217명에서 3천189명으로 늘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마을기업은 지방 소멸 해결의 대안으로도 부상하고 있지만 그간 안정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어 지속적인 육성이 어려웠다.

이달희 의원은 "마을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중장기적 육성 및 지원 정책이 필수"라며 "이번 제정 법안을 통해 마을기업이 지방 소멸 극복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교육위에서는 강성 보수 성향의 역사 교육 논란을 빚은 교육단체 리박스쿨 청문회가 열려 여야가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의 역사·정치관을 추궁하며 왜곡된 역사 교육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청문회가 개인 사상 검증 자리가 돼선 안 된다며 댓글 조작 등 제기된 의혹에 대해 수사 결과를 지켜보야 한다며 맞섰다.

손효숙 대표는 "역사를 왜곡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얘기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참석해 전두환씨 명예 회복 추진 문건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참석해 전두환씨 명예 회복 추진 문건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