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면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질 수 있는 분들이 말 그대로 '응급'하게 치료를 받으러 오는 곳이다. 응급실에서의 1분 1초가 갖는 무게감은 병의 경과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는 대부분의 다른 진료상황에서의 그것과 같지 않음이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데 보탬이 되고자 24시간 밤을 지새우며 고군분투 중인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폭력행위는 피해자인 의료인뿐만 아니라 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수많은 환자분들에 대한 폭력행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응급실에서의 폭력사건 사고들이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현실에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차마 감출 수가 없다.
지난 1월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의 한 교수가 부부싸움 중 배우자가 휘두른 식칼에 팔을 다친 환자의 응급 수술을 마친 뒤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인 가해자에게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몇 시간 전 배우자에게 식칼을 휘두르며 특수폭행을 저지른 가해자가 수술 후 보호자라고 나타나 치료 경과를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너무나 황당하며 경악스럽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와 함께 병원에 동행한 가해자에 대해 병원 직원에게 "가해자를 혼자 두면 사고 칠 것 같아 병원에 임의동행했다"라고 설명한 뒤, 일단 가해자를 병원에서 퇴거 조치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이를 무시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으며 피해자인 배우자를 치료한 교수에게마저 폭언과 폭행을 저지르고 나서야 보안요원 신고로 다시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이 사건에서 경악스러운 점은 특수폭행 사건 후 가해자의 분리조치 및 피해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점은 경찰은 이 가해자를 응급의료법 위반이 아닌 응급실에서의 단순폭행죄로 송치했으며, 검찰 또한 가해자에게 응급의료법이 아닌 단순폭행으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기소를 했고, 수원지방법원 또한 응급의료법 위반을 인정하지 않고 검찰의 기소 내용 그대로 약식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이는 응급의료법 내 응급의료 방해 금지 대상 행위에 응급환자에 대한 '상담'행위가 포함돼있지 않았기 때문인데, 다행스럽게도 지난 3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의 대표발의자로 응급의료 방해 금지 대상 행위에 응급환자에 대한 '상담'행위를 포함했다. 또, 기존에는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위해서는 폭력으로 인한 상해의 증거가 명확해야 했지만 폭행행위 자체로도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안 의원은 이에 더 나아가 응급의료법이 응급실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응급실 외의 장소에서 응급의료를 실시하는 경우 해당 장소를 포함한다는 추가조항을 신설, 응급의료법 위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단 응급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수분 수초 안에 운명이 결정지어질 수도 있는 응급실에서만이라도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적어도 응급의료종사자에게는 절대로 물리적 및 정신적 위해를 가해서는 안될 것이며, 위와 같이 법의 사각지대를 법의 집행자 스스로 공공연하게 노출시키는 과오를 다시는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더욱 강력한 처벌과 의료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법 집행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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