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중고차매매업체 불법영업 '봐주기 처분' 만연

입력 2025-07-02 16:55:28 수정 2025-07-02 21:16:23

박채아 도의원, 실태조사 결과 공개… 도·국토부에 체계 개편 및 강력 대응 촉구
경산시 '위반 없음' 보고했다가 도의회 지적에 17건 위반 수정
점검기록부 누락·보험 미가입…경주·안동서도 불법 다수 적발
"조합·국토부 모두 책임 회피 말아야"

사업정지 30일 처분을 받은 사업장 대표가 제출한 행정처분전 의견제출 서류에 해당 지자체 담당자가 지역사회 봉사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업정지 10일을 감경해줬다. 이 담당자는 자동차관리법 제21조제2항 등의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 어디에도 봉사 감경 사례는 없다. 박채아 경북도의원 제공
'막 지우고 막 쓰고?' 경북 모 시군의 A 업체 실태 점검표. 자동차 매매업 실태 점검표에 임의로 글자를 지우거나 다른 필체로 수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박채아 경북도의원 제공

A씨는 안동의 한 자동차매매업체에서 중고차를 구매했다. 구매 당시 사고 이력도 없고 성능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당 업체에서 들었다. 하지만 구매 석 달도 안 돼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해당 업체에 항의했지만 차량 점검표를 들이밀면서 매매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차량 점검표의 진위가 의심됐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경북 지역 중고차 매매업체들의 불법 영업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단속해야 할 시군 행정기관이 오히려 '봐주기식' 처분을 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제도적 허점이 누적되면서 소비자 피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경북도의회 박채아 도의원(경산·교육위원장)은 경북도 교통정책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2022~2024) 경산·경주·안동·구미·포항 등의 중고차 거래 관련 서류를 확인한 결과, 중대한 불법 행위들이 다수 적발했다고 2일 밝혔다.

◆ 반복되는 불법 행위…허가 취소에도 영업 강행

박 도의원에 따르면 경산 등 5개 지자체에서 ▷성능·상태 점검기록부 미고지 ▷성능보증보험 미가입 ▷상품용 표지 미부착 등 자동차관리법 의무 사항 위반 등이 확인됐지만 단속이 이뤄지지 않은 채 시중에 차량이 유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매매업체가 취급하는 자동차 관련 서류는 여전히 수기로 작성돼 임의 수정 의혹도 제기되고 있었다.

5개 지자체 중 경산시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경산의 한 자동차 매매업체는 점검기록부 고지와 보험 가입을 이행하지 않아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영업을 지속하다 허가가 취소됐다. 더욱이 타 업체 명의를 빌려 무허가 영업을 계속했고, 취득세까지 회피하는 탈세 행위를 벌였지만 경산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산시는 영업정지를 받은 자동차 매매업체가 지역사회 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정지 기간을 열흘 경감해주기도 했다. '위반 사항 없음'으로 단속한 업체의 서류에 대해 경북도의회가 재검토 방침을 밝히자 매출 30건 중 17건이 위반 사항이라도 수정하기도 했다.

박 도의원은 "상위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감경 처분을 내린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며 "담당 공무원에 대한 문책과 함께 상급기관 보고 체계를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고차 매매 현장에서 불·탈법 행위도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차량 성능과 상태를 허위로 기재하거나 아예 점검기록부 자체를 생략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특히 점검기록부에 이상 내용이 기재될 경우 판매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부 매매업자는 이를 조작하거나 누락시키고 있다. 법적 의무인 보증보험 역시 판매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하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팔고 나면 끝이라는 식의 '소비자 무지 악용' 구조가 고착화된 셈이다.

◆무기력한 단속 시스템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속에 앞장서야 할 각 지자체 차량등록사업소 소속공업직 공무원 상당수는 자동차 관련 부서에서 대부분 보낸 탓에 지역 내 매매업체와 유착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박 도의원의 설명이다.

단속을 맡는 매매조합 역시 구조적으로 감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합 임원이 조합원(매매업체) 투표로 결정되는 탓에 실질적인 자정 기능보다는 '봐주기식' 운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온다.

◆매뉴얼·인력 확충·정보 공유 등 구조적 개편 시급

박 도의원은 불법 매매 근절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여러 개선책을 제시했다.

먼저 시군별로 제각각인 단속 기준과 절차를 지적하며, 경북도 차원의 통합 단속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태점검반 구성과 단속 시기, 처분 기준, 위반 사실 확인 절차 등을 표준화해 행정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고차 매매조합의 자정 노력도 요구됐다. 조합 차원에서 점검기록부 작성과 보증보험 가입 등 관련 법규에 대한 교육을 정례화하고, 조합 전산망을 통해 불법행위를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제도적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재 시군 공무원들이 매매조합 전산망에 접근할 수 없어 성능점검 이행 여부나 보증보험 가입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박 도의원은 "중고차 시장의 신뢰 회복은 도민 안전과 직결된다"며 "도민이 피해보지 않도록 제도와 행정 모두 총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정지 30일 처분을 받은 사업장 대표가 제출한 행정처분전 의견제출 서류에 해당 지자체 담당자가 지역사회 봉사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사업정지 10일을 감경해줬다. 이 담당자는 자동차관리법 제21조제2항 등의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법 어디에도 봉사 감경 사례는 없다. 박채아 경북도의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