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와 파스타, 에스프레소… 천천히 음미하는 지중해의 맛
전통 음식 보존 위한 연대 시작…패스트푸드점 자국 도입 반대
남부, 해산물·파스타 요리 발달…북부, 육류·치즈·쌀 활용 다수
설탕 듬뿍 들어간 에스프레소…로마·나폴리식 피자도 맛 좋아
연일 폭탄이 터진다. 사랑·박애·자비를 지향하는 그들의 종교는 언제부터인가 '인류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지워내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이제 서로에게 하나의 '흉기'가 되어버렸다.
천국을 겨냥한다지만 실은 둘의 관계는 지옥만큼이나 음울하기만 하다. 그리고 자본주의란 이 냉혹한 하늘 아래 웅크린 인권 역시 '빈익빈 부익부'로 왜곡된다.
사람들은 자본으로 인해 지쳐버린 가슴을 힐링하기 위해 느릿느릿 '여행'하지만 실은 또 다른 자본을 소비할 따름이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이고 모순적인가. 그걸 알면서도 나는 징글징글한 요놈의 욕망을 데리고 12시간 너머에 있는 '슬로푸드'의 성지로 불리는 이탈리아로 날아간다.

◆지중해 햇살
이오니아해, 에게해, 아드리아해…, 지중해의 햇살은 유백색 대리석을 닮았다. 바닷물에 닿으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돌로 불리는 '청금석'의 질감이 뿜어져 나온다.
나폴리, 그리고 카푸리, 시칠리아섬, 마지막엔 유럽 은퇴자들의 마지막 휴양지로 불리는 토스카나의 햇살을 함께 친견해봐야 한다. 그래야 슬로푸드의 질감을 감지할 수 있다.
지중해의 윤슬을 친견한 뒤 '끝판 전원풍경'으로 평가받는 토스카나 지방으로 갔다.지평선까지 이어진 대구릉의 합창을 엿들었다. 봉홧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영화 '글래이디에이터'의 첫 장면이 떠올랐다.
발도르차 평원, 그 중간 사이프러스 나무가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처럼 도열한 주인공 막시무스의 집이 있는 곳이다. 그 나무 옆에 그리스신화 시절부터 함께 했던 올리브나무, 그리고 유럽의 와인의 출발점인 포도나무가 햇살과 한 세트로 묶여다니면서 묘한 이국적 정서를 부여하다. 포도는 석회질의 땅을 좋아한다. 석회질 토양이라 물맛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생수값이 우리보다 두 세배 이상 비싸다. 식당에 가도 공짜 물이 없다. 돈을 주고 사 먹어야 된다. 하지만 포도에게는 더없이 유익하다. 뿌리가 10미터는 족히 수직으로 뻗어 내려간다. 그래서 일급 와인이 가능하다.
이동 간 관광버스 안에서 수십 번은 봤을 것 같은 오드리햅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을 정독했다.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주인공 앤 공주의 한 대사가 귀국 후까지 귓가에 쟁쟁했다. '나는 앵무새가 아니란 말이예요!' 그럴지도 모른다. 다들 앵무새가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밥벌이' 탓에 앵무새가 된다.
황제와 노예가 공존했던 로마제국.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상 길의 귀결점이었고,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의 도시, 그 로마에는 여러 종류의 식당이 있다.
'오스테리아'(Osteria)와 '트라토리아'(Trattoria). 둘은 모두 이탈리아 가정식 레스토랑이다.
가족이 경영하는 가정식이면 트라토리아, 가족 경영이 아니면 오스테리아.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최고급 풀코스를 즐길 수 있는 건 '리스토란테'(Ristorante).

◆이탈리아 푸드의 정수
프랑스가 양식의 교범이라지만 그걸 가능하게 된 건 이탈리아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타리나 공주가 프랑스에 시집가면서 데려간 요리사들이 프랑스에 다양한 요리를 전파시킨다.
1861년 통일을 이룬 이탈리아 음식은 크게 남부와 북부가 크게 차이가 난다. 각각의 요리 특색을 보자면 나폴리, 시칠리아 등의 남부는 해안가라서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으며, 맵고 짠 강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토마토소스를 쓰는 피자와 파스타가 발달했다. 반면에 베네치아, 볼로냐, 밀라노, 제노바 등 북부 지방은 알프스산맥에 접하고 있어서 육류와 치즈를 이용한 요리가 많고 남부보다 리조토와 같은 쌀 요리를 많이 먹는다.
이탈리아는 타민족 음식에 대해 상당히 거부감이 많다. 외국 음식을 거의 안 먹는 나라다. 세계 미식의 최고봉 프랑스에도 이탈리아 식당이 있지만 이탈리아에선 프랑스 식당을 보기 참 힘들다. '로마의 휴일' 촬영 장소였던 로마의 스페인광장 계단 옆에 맥도날드가 생길 움직임이 보이자 지식인, 언론인, 사회운동가 등이 모여서 개업 저지 데모를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발 슬로푸드
언젠가부터 이탈리아는 '슬로푸드의 성지'가 된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카를로 페트리니와 그의 동료들은 패스트푸드 업계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로마의 스페인광장에 진출하자 발끈한다. 자국 음식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정하면서 전통음식 보존을 위한 새로운 연대를 시작한다. 그 움직임은 나중에 '슬로푸드 운동'의 모태가 된다. 한국에 지부를 둘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간 이탈리아에서는 중국 음식 정도가 이국 음식의 대부분이었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간혹 눈에 띄지만 대개는 여행자용 식당이다.
이탈리아인은 먹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이탈리아인은 하루 무려 5끼를 먹는다. 조선조 왕과 비슷했다. 맨 먼저 먹는 음식이 '콜라지오네', 이때는 에스프레소 한잔에 비스켓 정도로 해결하고 오전 11시에는 '스푼티노'란 간식을 먹고, 점심(프란조), 오후 5시에 간식인 '메란다', 저녁(체나)을 먹는다. 길게 먹을 경우 무려 3시간 동안 즐긴다. 특히 로마제국 시절 로마인은 먹기 위해 태어났을 정도로 먹는데 목숨을 걸었다. 그걸 본 사상가인 세네카가 이렇게 비난을 한다. '로마인은 먹기 위해 토하고 토하기 위해 먹는다.'
◆파스타 & 피자
파스타는 '인파스타래리'라는 이탈리아말에서 온 것으로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것의 총칭'이다. 나비와 바퀴, 알파벳 등 모양과 당근, 오징어먹물, 시금치 등 재료에 따라 수백여 가지가 있다. 단면이 동그란 면을 보통 '스파게티'라고 한다. 파스타는 에피타이저와 메인 사이에 먹는다.
파스타는 생파스타와 마른 파스타로 양분된다. 건조 파스타는 '두럼'이란 밀을 빻아 만든 '세몰리나'가 주재료다. 파스타는 물 대신 달걀로 반죽해 아주 쫄깃하다. 사용하는 면과 소스에 따라 무척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크림소스인 '카르보나라', 볼로냐 지방에서 유래한 토마토미트소스의 '볼로냐', 이탈리아어로 '조개'라는 뜻의 '봉골레' 등이 있다. 이 외에 가운데에 소를 넣고 싸서 만드는 만두와 비슷한 '라비올리', 감자와 밀가루 반죽으로 수제비처럼 생긴 '뇨키'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이탈리아에는 파스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따로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모여서 발표회를 갖기도 한다.

◆피자의 기원
일단 현대판 피자는 이탈리아가 종주국이지만 그 기원은 튀르키예의 전통빵인 '피데'이다. 이게 그리스 등 서남아시아권을 배회하다가 나중에 이탈리아에서 현재 형태의 피자를 완성하게 된다.
피자만드는 사람은 '피자이올로'라고 한다. 파는 전문점은 '피자리아'다. 우리의 도자기 장인 이상의 기술자로 인정을 받는데 이 피자의 레시피는 현재 이탈리아 국가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피자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보통 나폴리 스타일과 로마 스타일로 나눠진다. 로마 스타일은 얇고 바삭하고 나폴리 스타일은 빵이 도톰하고 부드러운 게 특징.
이탈리아 사람들의 피자 전통에 대한 보존의식이 대단하다. 피자가 원형을 잃어간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폴리의 유서 깊은 피자리아 관계자들이 1984년 한 자리에 모인다. 바로 '진정한 나폴리 피자 협회'(AVPN)를 결성한다. 협회는 나폴리 전통과 관습대로 생산한 피자의 가치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힌다. 2004년 급기야 이탈리아 정부에 정통 나폴리 피자의 재료와 요리법을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와인처럼 지역특산품으로 인증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미국식 피자는 이탈리아와 달리 도우가 두툼하고 위에 토핑도 더 다양하다. 보통 뉴욕과 시카고 스타일로 양분된다. 뉴욕형은 상대적으로 얇은데 얇은 도우 위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치즈를 올리고 그 위에 페페로니로 토핑한 게 특징이다. 시카고 피자는 깊은 그릇에 굽는다고 해서 '시카고 딥 디쉬'라고도 한다. 일반 피자와는 다르게 움푹한 파이팬에 다양한 토핑과 치즈를 넣고 오븐에 구워 낸다. 두께가 2~3cm로 굉장히 두꺼운 편이다.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건 토마토케첩·치즈·바질 토핑의 '마르게리타'이다.
이탈리아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먹지만 미국식은 손으로 뜯어먹는다. 이탈리아식은 화덕에서 굽지만 미국식은 팬에서 굽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피자가게는 1972년에 등장한다. 한국의 피자는 뉴욕보다 시카고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원샷 에스프레소
이탈리아에 와서 아메리카노를 찾으면 참 난감하다. 본토에서는 역시 에스프레소에 엄지척한다. 그들은 찔끔찔끔 마시지 않는다. 약을 먹듯 한입에 털어 넣어버린다. 고속도로 휴게소 카페존에 가면 1회용 봉지 설탕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우리는 원액만 즐기지만 그들은 설탕을 섞는다. 나도 봉지를 찢어 잔 안에 설탕을 모두 쏟아붓고 한입 가득 삼켰다.
1929년 무솔리니와 신사협정을 통해 성베드로대성당이 있는 바티칸시국이 개국된다. 요즘 세계의 관광객이 여기로 몰려든다. 평생 지은 죄를 면죄받을 수 있는 '대희년'이 있는 해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나와 그늘에 퍼질러 앉아 젤라토를 먹었다. 주위를 돌아봤다. 브랜드의 세상이었다. 세계 최강 패션 브랜드숍이 사라진 로마 황제 같았다.
대구의 이탈리아 요리는 2000년대부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현재 특별한 두 가게가 남구 대명9동에 있다. 구자태·구자덕 형제가 운영하는 '국수'와 '지오네'이다. 형은 2001년 중구 삼덕성당 뒤편에 있는 '이태리 앤 이태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때 인투, 디종, 소렌토, B2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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