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했더라면…" 심판관의 아첨은 독이 돼 황제를 삼켰다
전차 경주서 낙마, 중도 탈락했지만 "끝까지 달렸다면 우승" 엉터리 판결
절대 권력에 굴종한 심판, 공정 잃어…보다 못한 원로원 "네로는 국가의 적"
민주 공화정의 반대는 왕정이다. 폭군을 상징하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올림픽에서 우승한 역사를 반추하며 대한민국 법원과 헌정질서의 암울한 현실을 진단해 본다.
◆네로 황제 집터에 세워진 콜로세움
이탈리아 수도 로마 심장부에 우뚝 솟은 금자탑 콜로세움(Colosseum).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콜로세움이 들어선 시기는 서기 80년경. 타원형 검투 경기장인 콜로세움의 크기를 보자. 넓은 지름 189m, 짧은 지름 156m, 둘레 528m, 높이 48m. 수용 관중은 최하 5만여 명.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경기장인 서울 동대문 운동장(현 DDP) 수용 규모가 3만 여명이니 거대한 규모가 잘 읽힌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자리는 원래 네로 황제 궁전터다. 네로 황제의 저택과 그가 좋아했던 모의 해전 장소인 거대 연못을 메우고 세운 게 콜로세움이다. 콜로세움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로도스항 사슴 동상과 헬리오스 거상, 콜로수스
에게해 동남부의 아름다운 로도스섬으로 가보자. 아담한 로도스 항구 어귀 양편에 앙증맞은 사슴 조각이 맞아준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원래 그리스 태양신 헬리오스의 거대한 청동상이 서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B.C.323년 정복왕 알렉산더가 유프라테스 강변의 아름다운 대도시 바빌론의 궁전에서 회식(심포지온) 도중 쓰러져 10일 만에 33살 나이로 숨을 거둔다.
이후 부하 장군들이 그리스에서 인더스강까지 거대 제국을 분할, 통치하며 치열한 내전을 치른다. 이 와중에 마케도니아 왕국을 계승한 데미트리오스 1세(알렉산더의 부하이자 마케도니아 왕국 섭정이던 안티고노스 1세 아들)가 B.C.305년 로도스섬을 침공한다.
이때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알렉산더의 부하이자 기병대장 프톨레마이오스 1세 건립)의 도움을 받은 로도스가 마케도니아를 물리친다. 수호신 헬리오스에 대한 감사 표시로 헬리오스 조각을 B.C.280년경 세운다. '콜로수스(Colossus)'라고 불린 이 거대 조각은 B.C.226년 지진으로 파괴됐지만, 거대한 동상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네로는 헬리오스 거상에 버금가는 자신의 30여m 동상을 세웠다. 네로 콜로수스이다. 이를 허물고 세운 검투 경기장이어서 장소 접미사 움(um)을 넣어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올림피아 올림픽 전차 경주 참가한 네로
네로가 탐냈던 것은 콜로수스만이 아니었다. 올림픽 우승. 네로는 올림픽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 67년 직접 그리스 올림피아를 찾았다. 네로가 참여한 종목은 전차 경주.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여행기(Periegesis Hellados)』에는 올림픽 전차 경주장이 별도로 존재했고, 신전의 성역 바깥에 있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오늘날 올림피아 근처 알페이오스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지형을 변화시켜 네로가 챰여한 전차 경주장의 위치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차 경주장 로마 키루쿠스 막시무스
전차 경주장이 얼마나 큰지 보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남쪽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을 지나 천천히 걸어보자. 오른쪽으로 클라우디우스 수도교 유적을 거쳐 15분여 만에 거대한 전차 경주장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에 이른다. 지중해 전역 로마 제국 영역에서 가장 컸던 전차 경주장, 키르쿠스 막시무스의 관람객 수용 규모는 최고 25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키르쿠스 막시무스에 일부 잔해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관중석 등의 실체를 볼 수 없다.


◆레바논 티레, 이스라엘 카이세리아의 전차 경주장
레바논의 해안 도시, 번영하던 옛 페니키아 도시 티레에 로마 전차 경주장 관중석이 상당히 큰 규모로 오롯하다. 탐방객들은 돌로 만든 거대 관중석에 앉아 네로가 달리던 전차 경주 장면을 연상해 보기 좋다. 티레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이스라엘 카이세리아다. 여기에도 전차 경주장 관중석이 남아 네로의 허욕을 피워 올린다. 카이세리아 전차 경주장은 명배우 찰턴 헤스톤의 영화 「벤허」의 공간적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도 실체를 보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시칠리아 전차 경주장, 튀니스 전차 기수 모자이크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로 발길을 옮겨보자. 튀니스 구시가지가 한니발이 활약하던 카르타고다. 바닷가 유적지는 해상왕국 카르타고의 뛰어난 항구 입지 조건을 잘 보여준다. 신시가지 튀니스의 바르도 박물관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로마 모자이크를 소장한 곳이다. 이곳에 전차 경주 관련한 다양한 모자이크가 기다린다.

완벽한 형태의 전차 경주장 모자이크는 현장 유적들에서 볼 수 없는 완전체 경주장의 면모를 보여준다. 검투사가 인생 막장에선 마초 같은 남성이었다면 전차 기수는 사회 명사로 대접받았다. 바르도 박물관에 전시중인 「에로스」라는 이름의 전차 기수 모자이크에서 네로가 꿈꾸던 인기스타의 면모가 한껏 묻어난다.

◆영국 킹스턴 어폰 헐의 전차 전복 모자이크
전차 경주장은 영광으로만 가득한 게 아니다. 영국 북동부 킹스턴 어폰 헐에 있는 이스트 라이딩 박물관으로 가보자. 경주 중에 뒤집힌 로마 전차 모자이크가 생생하다. 「벤허」에 나오는 비극적인 전차 전복 사고를 연상시킨다. 네로가 일정을 연기시켜 억지 참여한 67년 올림픽 전차 경주. 다른 선수들의 말 4마리 전차와 달리 네로는 10마리로 전차를 꾸렸다. 하지만, 경주 도중 사고로 말에서 떨어져 탈락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우승의 영광은 네로 품에 안겼다.

◆네로 '국가의 적' 선포되고, '자살령'과 '기록 말살형'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황제열전 (De Vita Caesarum)』에 네로가 올림픽 전차 경주 당시 말에서 떨어져 경주를 마치지 못했는데도 우승이 선언됐다고 기록한다. 이유는? 심판관이 만약 네로가 끝까지 달렸다면 우승했을 것이라고 판정했기 때문이다. 황제 권력 앞에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심판관의 판정이 뒤틀린 거다. 수에토니오스는 네로가 이 엉터리 판결로 빚어진 우승을 홍보하기 위해 로마 시내에서 대규모 개선 행진을 펼쳤다고 덧붙인다.
보다 못한 로마 원로원은 68년 6월 네로를 '국가의 적(Hostis Publicus)'으로 선포하고, '자살 명령'과 '기록 말살형'을 내렸다. 네로는 측근 에파프로디토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폭군 네로에게 적어도 그럴 용기는 있었다.
◆국민의 뜻과 반대로 가는 법원, 무너지는 헌정질서
이재명 대통령 당선 뒤, 재판을 줄줄이 무기 연기하는 판사들 모습에 네로에게 우승을 선언한 심판관의 모습이 소환된다. 49% 지지로 이재명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의 64%는 대통령이 돼도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대통령이라도 특권은 없다는 주권자의 입장이 확고하다.
법대로 신속하게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선거법 위반을 판결한 대법원을 '법관회의'를 열어 따져보겠다고 일부 판사들이 나섰다. 하지만, 이 정치 판사들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유튜브에 출연해 대법원의 누군가와 소통을 암시한 이재명 전 후보의 발언에는 입을 닫는다.
우리 헌법 [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그 어떤 권력자도 특별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게 명백한 헌법정신이다. 그래서 윤석열 전 대통령도 탄핵한 것 아닌가? 법이 권력과 돈에 무릎 꿇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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