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리셋] (3)국민의힘, 체질 개선 시급…'웰빙 정당' 탈피해야

입력 2025-06-08 16:16:04 수정 2025-06-08 20:48:48

전투력 부족·허약 체질 개선…고관대작 출신 공천 관행 끊어야
TK·PK 공천=당선 구도 굳건…107명 중 '텃밭 정치인' 58명
전국 단위 선거 패배 악순환
당권 따라 공천 기준 오락가락…대선 전력 쏟기보단 이후 대비
평시에 땀 흘릴 필요 못 느껴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개혁 과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개혁 과제 등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제22대 총선 참패 이후 만회를 벼르던 국민의힘이 이번 대선에서 정권까지 내주며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자, 보수 정당에 대한 대대적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주문이 터져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강성 보수 지지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줄 결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당면한 선거 승리를 위해 중도 보수층을 끌어안는 전략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야당'으로 처지가 뒤바뀐 국민의힘을 향한 치열한 체질 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보수 정당, '전투력 부족·허약 체질' 개선 절실

보수 진영에선 윤 전 대통령 파면이라는 악재에 내부 분열까지 겹치면서 대선판이 더불어민주당으로 크게 기운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보수 정당의 '부실한 체질'이 연이은 참사의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구체적으로 당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공직 후보자 공천 기준'이 당의 결집력과 전투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상대 정당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에 대해 사활을 걸고 입법 전쟁을 불사하는데도, '공천=당선' 분위기가 완연한 국민의힘 '텃밭 정치인'들은 뒷짐 지고 상황을 관망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텃밭 정치인들은 정국 주도권을 가를 눈앞의 현안보다는, 누가 차기 당권과 공천권을 거머쥘 지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처럼 보수 정치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재선(再選)'에만 목을 매는 텃밭 정치인이 국민의힘 당내 최대세력이라는 분석은 뼈아픈 대목이다.

국민의힘 소속 현역 국회의원 107명 가운데 지역구를 대구경북(TK)에 두고 있는 의원은 25명, 부산·울산·경남에 두고 있는 의원은 33명이다. TK·PK 등 영남지역 국회의원이 58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정당 운영 핵심 인력이자 대여 투쟁의 주력군인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절반이 정치적 현안보다는 자신의 재선과 공천권의 향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조직이 과연 사생결단식 전쟁을 벌이는 대선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했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 대선 출마 후보가 3년 뒤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을 한 텃밭 정치인들은 이번 대선에서 전력을 쏟기보다 대선 후 국면을 준비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했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공천이 시스템이 아니라 공천권자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텃밭 정치인들의 전투력 회복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특히 당이 당내 최대 세력인 텃밭 정치인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각종 전국 단위 선거에서 격전이 벌어지는 수도권과 충청권의 의견이 소홀히 다뤄지고 그 여파로 최대격전지 승률이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수도권의 한 국민의힘 원외 당협위원장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당 지도부가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면서 당 핵심지지층의 손을 들어주는 선택을 하다보니 중도보수층의 표가 있어야 당선되는 수도권 원외정치인들은 한숨만 깊어지는 형편"이라면서 "수도권 도전을 희망하던 정치 지망생들이 뜻을 접고 텃밭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당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고관대작' 출신, 공천 관행 끊어야

또한 국민의힘은 '평시' 당에 대한 기여나 의정 활동이 공천 과정에 거의 반영이 안 되는 구조이므로, 당에 대한 당원과 예비정치인들의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 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천지개벽이 일어나는데 굳이 평시에 당을 위해 땀을 흘릴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당내에 파다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가운데 관료 출신 이른바 '고관대작 출신'이 너무 많아 당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대구의 현역 국회의원 1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7명이 공직자(법원·검찰·경찰 출신 포함) 출신이다. 과거보다 비중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보수 정당이 충원하는 인력 상당 부분이 각종 고시 출신이다.

과거 우리 사회의 전문화 수준이 미약했던 시절에는 관(官)에서 조직생활을 하면서 성장한 고시 출신들의 능력과 애국심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제는 공직생활도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이다.

고위 공직자를 지낸 후 그에 따른 포상의 성격으로 이른바 '금배지'를 거머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보수 정당의 고질적인 '웰빙 정치 문화'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실 한 보좌관은 "아무래도 중앙공무원 출신들은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훈련이 되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면서 "시민단체, 운동권, 당직자, 보좌관 출신을 대거 발탁해 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민주당과는 차이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고위공직자 출신이 텃밭 공천을 받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국민의힘이 '보신 정당', '웰빙 정당'에 머무는 주요 원인이 된다는 보수 진영의 지적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보수 정가 한 관계자는 "당이 추구하는 이념을 지키며 경쟁 정당과 처절하게 싸운 당원들이 고관대작 출신 인사들에게 공천에서 밀리면서 보수 정당이라는 성(城)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며 변화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