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독립운동의 성지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과 '광복회'는 국내 항일 독립운동의 선구적 단체이다. 대구는 이러한 대표적 항일 독립단체가 가장 먼저 결성되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원동력이 된 항일(抗日) 독립운동의 시작점이자 독립운동의 성지였다.
1910년대 일제강점기 초기의 비밀결사운동은 대구지역이 가장 활발했다. 1915년 대구 안일사에서 국권회복 노선에 기초한 '조선국권회복단'이 결성되었고 대구 달성토성에서는 항일 독립운동의 대표적 선도단체로 평가받는 '광복회'가 창립되었다.

광복회 총사령관인 박상진과 채기중, 우재룡과 이시영 등의 독립투사들은 친일파를 처단하고 일본 헌병대를 공격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광복회 지휘장으로 활동한 우재룡은 조선 말 항일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선봉장으로 일제에 맞선 인물이다. 광복회는 3·1운동과 의열단 창단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었다.

대구 출신 이종암은 김원봉 등과 의열단을 조직했고, 임시정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의열단 부단장으로 크게 활약했다. 또한 민족시인 이육사도 의열단 단원이었다. 안동 태생인 이육사는 대구에 주소를 17년간 두었고 실제 생활도 10년 이상 하였다. 17번이나 투옥되어 옥고를 겪은 이육사는 언론사 기자로도 활동하며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절정', '광야에서' 등과 같은 항일 저항시를 창작했다.
또한 민족시인 이상화와 한국 단편소설의 선구자인 빙허 현진건이 있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는 저항시를 남겼다. 현진건은 언론사에 재직하면서 1936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의거의 주역이었다. 상화와 빙허는 한순간도 친일하지 않고 끝까지 지조와 신념을 관철한 인물들이다.


◆ 학생과 젊은이들이 주도
대구가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끊임없이 이어진 학생들의 투쟁이 큰 역할을 한다. 대구사범학교의 다혁당, 대구상업학교의 태극단,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중심으로 한 신우동맹, 계성학교의 혜성단 등이 대표적 항일 학생투쟁단체로 뒷날 2·28민주운동으로 이어졌다.
1919년의 3·1만세운동도 학생과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 대구고등보통학교 등이 동참했다. 계성학교 아담스관 지하실은 3·1만세운동 당시 필요한 태극기를 만들고 독립선언문을 준비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계산성당 건너편에 있는 90계단에서 청라언덕으로 연결되는 대구 3·1운동길은 3·8만세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이동한 역사적인 길이다.


대구는 나라 밖에서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애국지사들도 매우 많다. 중국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광복군 등에서 독립운동을 벌였고, 일본에서는 노동 운동과 비밀 결사 활동을 벌였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 이상정과 현진건의 형 현정건 등은 상하이 임시정부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했다.

이종암과 서상락, 송두환과 문영박 등은 임시정부의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군자금 모금운동 등에 앞장선 독립투사들이다. 또 의열단 사건 등으로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의 변론에 헌신한 애산 이인과 같은 항일 인권변호사도 있다. 대구의 대표적인 서화가이자 독립지사인 김진만은 아들 김영우와 손자 김일식까지 독립투사로 활약한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대구 3·8만세운동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김태련은 대구만세운동의 첫 희생자인 그의 아들 김용해와 함께 부자가 같이 '국립신암선열공원'에 안장돼 있다. 국립신암선열공원은 전국 유일의 독립운동가 전용 국립묘지로 독립지사 52위의 영령이 모셔져 있는 선열공원이다. 1940년에 김구 등의 주도하에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 독립군인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대구경북 출신은 전체 광복군의 10% 정도인 8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독립운동의 상징적 공간,대구형무소,
대구에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 운동지사가 투옥되고, 순국했던 대구형무소가 있었다. 대표적 항일 저항시인 이육사의 호 '264'는 대구형무소 투옥 당시의 수인번호다. 3·1운동 당시 5천여 명이 투옥된 대구형무소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순국의 터로 서울 서대문형무소보다 독립운동 서훈자가 더 많았다.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거사의 장진홍,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 등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고 순국한 독립운동의 상징적 공간이다. 현재 과거 대구형무소 사형장 자리에는 선열들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대구형무소역사관'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민족시인 이육사가 10년 이상 살았던 남산동 생거지 고택을 대구시가 시민들과 함께 '이육사기념관'으로 조성했다. 재개발로 잊혀질 뻔했던 공간을 시민단체와 지자체가 함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린 뜻깊은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또 100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교회 벽에 독립지사들의 얼굴을 새겨둔 남산교회가 있다. 남산교회에는 대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만집, 김태련, 김용해, 백남채의 인물 부조가 조성되어 있다.
우현서루와 시무학당, 조양회관과 교남YMCA회관, 대구광문사와 대구광학회, 대한협회 대구지회와 달성친목회 등의 단체들은 교육 진흥과 애국계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우현서루'는 나라를 바로 세울 의롭고 실력 있는 지사를 양성하는 등 민족교육에 큰 공헌을 한 교육기관이다. '조양회관'은 일제강점기 때 자주 자강과 민족 계몽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한 실천 도장이었다.

서상일의 주도로 세워진 조양회관은 '조선의 빛을 본다'라는 의미의 독립 의지를 담은 공간이다. 원래 달성공원 앞에 있었으나 1983년 망우당공원으로 이전 복원했다. '교남YMCA회관'은 대구 3·1운동을 주도한 지도자들의 모임 터이자 대구 신간회 등 민족운동의 활동 거점이었다. 대구 근대사를 이어 온 곳이자 대구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이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한때 철거 위기에 있었으나 시민 모금의 힘으로 현재 대구 3·1만세운동기념관 및 대구YMCA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독립운동 가치 재조명
중구 계산동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크게 활약한 이상정 장군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 형제의 고택이 있다. '이상화 고택'은 전시관 및 교육의 장소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상화 고택과 마주 보는 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기부 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을 이끌었던 '서상돈 고택'이 있다. 또한 대구의 대표적 녹지공원인 두류공원 내 위치한 '인물동산'은 독립투사들을 기려 조성된 공간이다. 이상화와 우재룡 등을 비롯한 대구 출신 우국지사들의 동상과 비석을 세워서, 그들을 기리고 있다.

한편, 동구 봉무동에는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군사 동굴이 약 20기가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이곳 암벽에 대포를 숨겨 두려고 군사용 동굴을 판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우리의 아픈 역사 현장이다. 동구 평광동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숭고한 의미를 간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광복의 기쁨을 기념해 1945년 9월에 심은 '광복소나무'다. 대구의 광복소나무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광복 당시 식수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대구는 항일의병운동史와 독립운동史에서 거점 역할을 선도한 도시다. 일제강점기에 의병활동과 국채보상운동, 비밀결사운동 등 항일투쟁의 중심에서 가장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친 흔적을 보유한 곳이자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도시다.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 구국(救國)운동의 산실인 것이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에 의하면 대구에 존재하는 독립운동 유적은 약 90여 곳이나 된다. 곳곳에 존재하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총망라해서 독립운동의 흔적과 기억을 되살리고,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과제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 과제는 중장기적 로드맵을 수립한 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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