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재료 올린 '비빌밥'과 버무려 나오는 '비빈밥' 두 종류
진주 '천황식당' 울산 '함양집' 전국서 가장 오래된 전문점
대구선 '개정식당' 선두 주자…육회 넣고 참기름으로 맛 내
섞임과 비빔. 둘의 뉘앙스는 꽤 다르다. '섞임'은 형식적 공유, '비빔'은 질적 공유의 힘을 갖고 있다. 그냥 여러 요소를 섞는다고 해서 진미(眞味)가 들리지는 않는다. 비벼져야 한다. 그럼 각 개성은 전체의 울림을 위해 자기의 도드라진 색깔을 공동의 미감을 위해 한 발씩 양보한다. 가족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나라도 그런 것 같다. 가장 한국의 미감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팔도 비빔밥. 그 별미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골동반 & 부븸밥
다들 '골동반이 비빔밥의 원형'이라 여긴다. 골동반이란 용어는 1800년대말 '시의전서'(是議全書)란 조리서에 기록돼 있다. 시의전서는 상주군수였던 심환진의 필사본인데 비빔밥이란 용어가 '부븸밥'이란 이름으로 문헌상 처음 언급된다. 이를 토대로 '시의전서음식연구회'도 발족된 바 있다.
비빔밥도 두 종류가 있다. 부엌에서 미리 먹기좋게 비벼 나오는 '비빈밥'과 각종 재료를 고명으로 올려놓고 각자 알아서 비벼 먹도록 하는 '비빌밥'. 대다수 비빌밥이지만 비빈밥은 익산 황등리의 명물 '황등비빔밥'이 대표격이다.
◆별별 비빔밥
한반도에는 별별 비빔밥이 산재해 있다. 진주·전주비빔밥을 투톱으로 익산(예전 이리)의 황등육회비빔밥, '나비축제'의 고장 전북 함평 '화랑식당'과 '대흥식당'도 육회비빔밥 명가 중 한 곳이다. 또한 안동헛제삿밥, 거제의 멍게비빔밥, 문경의 산채비빔밥, 달성군의 사찰비빔밥, 콩잎 대신 팥잎을 사용했던 청도의 횟집나물비빔밥, 그리고 북한의 경우 특이하게 밥을 볶아서 만드는 해주비빔밥 등도 있다. 필자에겐 학창시절 혼자서 해먹었던 '김치볶음밥'의 추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요즘 하나의 트렌드가 된 별별 철‧돌판볶음밥도 파생 비빔밥의 신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빔밥 전문점은 어딜까. 전주가 아니다. 경남 진주시 대안동 중앙시장 내 '천황(天凰)식당'과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함양집'이 최고령이다. 전주비빔밥보다 더 역사가 오래됐다. 일제강점기에 장사를 시작했고 다들 3~4대를 이은 해묵은 집이다.

◆진주비빔밥
진주비빔밥은 모양이 예뻐, '화반'(花飯)이라 한다. 여러 계열이 있다. 방송에 너무 많이 노출된 천황식당과 천수식당은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 1929년 문을 연 천황식당은 반세기 전 한옥 스타일, 퇴락미가 있어 포토존으로 유명해진다. 하지만 토박이들은 제일식당과 진주칠보화반비빔밥 협동조합과 맞물린 경남문화예술회관 옆 '천년의비빔밥'을 주로 찾는다. 정계임 명인은 2012년 '진주비빔밥 칠보화반 이야기'란 저서를 통해 진주비빔밥 실체를 대해부한다.
진주비빔밥은 밥부터 특별하게 짓는다. 양지머리를 고아 그 물로 고슬하게 짓는다. 전주는 사골육수를 사용한다. 여러 나물이 올라가지만 빠져선 안 되는 게 바로 해초의 일종인 '속데기'다. 또한 전주엔 날계란이 올라가지만 진주는 계란에 기겁한다. 전주비빔밥과 확연히 구분되는 대목이다. 진주비빔밥은 선지가 들어간 보탕국, 물론 전주비빔밥은 콩나물국이 옆에 놓인다. 진주 보탕은 소고기, 참바지락, 마른 홍합을 다져 참기름에 볶아 피문어 삶은 물을 붓고 자작하게 끓여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핵심 재료는 '바지락'이다. 속데기와 바지락처럼 해산물을 항상 겸비하는 것도 진주비빔밥만의 특징. 많이 사용하는 나물은 고사리, 도라지, 박나물, 죽순, 숙주나물, 무나물, 애호박 등이다. 간장을 넣어 오랜 시간 '까바라지게'(조물조물 무친다는 진주식 표현) 무쳐서 볶다가 다시 갓 볶은 깨소금과 갓 짠 참기름을 넣어야 제맛이 난다. 고사리의 경우 끓는 쌀뜨물에 데친다. 육회는 소의 우둔살로 조리한다.

◆전주비빔밥
현재 전주의 최고 비빔밥 전문점은 '한국집'. 68년 영업을 시작했다. 한국관, 성미당, 가족회관, 갑기회관, 고궁 등이 뒤를 잇는다. 전주비빔밥 명인은 가족회관 여사장인 김연임.
전주비빔밥의 본질은 뭘까? 일단 사골육수로 밥을 짓는다. 윤활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콩나물국밥의 도시답게 콩나물이 빠지면 안 된다. 이건 쥐눈이콩, 서리태를 갖고 키운 것이라야 하고 또 이 묵이 빠지면 꽝인데 바로 해남 치자로 노랗게 물을 들인 황포묵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이 묵은 밥이 잘 비벼지게 만들고 제독효과도 있다. 그리고 육회와 날계란, 고추장 등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전주시는 지난 2012년 전주시가 국내 최초이자 세계 네 번째로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울산 함양집
울산시 남구 신정3동에 있는 함양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면 벽 상단에 나란히 걸린 역대 사장 할머니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1대는 강분남 할매, 그 딸인 안숙희 할매가 2대, 3대는 그 며느리인 황화선 할매, 4대는 첫째딸 윤희씨 내외가 나란히 이어왔다. 혈족들이 비빔밥을 수호하고 있는 대목이 너무 보기 좋았다.
봉화유기를 쓴다는 게 대단해 보인다. 한때는 스테인리스 용기도 사용했지만 이게 아니다 싶어 75년부터 유기를 사용하고 있다. 맛을 위해 놋그릇 온도를 50~57℃에 맞춘다.
함양집의 비빔밥은 '육회비빔밥'과 동일계열이다. 그대신 고추장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밥과 나물의 비율은 1대 2.5로 맞춘다. 고사리, 무나물, 시금치, 콩나물, 미나리만 사용한다. 철이 되면 미역도 썰어 넣는다. 쌀은 의성 안계쌀, 김도 들어가는데 맛소금이 들어간 공장김이 아니라 직접 완도산 김을 연탄불에 구워서 부숴낸다. 고추장도 공장용과 거리가 있다. 일단 질금물을 체에 걸러내 물을 내고 이를 불에서 걸쭉하게 만들고 거기에 고춧가루와 된장을 넣어 만든다. 맛을 위해 미리 재료를 담아두지 않는다. 그러면 밥이 퍼지기 때문이다. 보탕국은 무, 두부, 쇠고기, 조갯살, 홍합 등으로 빚는다. 그런데 진주비빔밥과 달리, 탕국에 선지가 없다. 육회도 한번 볶은 것과 생것, 두 종류가 있다. 고명으로 날전복 썬 것 한 조각을 올려준다.

◆익산 황등비빔밥
황등비빔밥을 만나기 위해선 우선 익산을 석공의 고향으로 만든 주인공인 황등석부터 만나봐야 한다. 매국노 이완용이 묘소가 있었던 황등산의 화강암은 거창석·포천석·합천석·문경석 등 국내 여러 명물 화강석 중 가장 변질되지 않고 입자가 균일하고 일정한 강도까지 유지하고 있다. 돌 안에 철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황등면의 중심 에너지인 황등산. 거기서 일하는 석공에게 가장 만만한 음식이 바로 황등비빔밥이었다.
국내 비빔밥계에선 막내격이다. 2014년 2월 백종원의 3대천왕을 통해 비빔밥이 알려지면서 대박난다. 내부 그림이 좋은 '시장비빔밥'과 허가된 황등비빔밥 1호점인 '진미식당'이 나란히 출연했다.
황등시장. 그리고 그 시장에는 상당한 규모의 우시장이 있었다. 우시장 옆엔 보통 소머리국밥과 순대국밥 등이 유명한데 여긴 육회비빔밥이 특화됐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만드는 과정은 절대 간단치 않다. 우선 여러 차례 '토렴' 과정을 거친다. 토렴을 마친 밥에 콩나물·참기름·고추장 등을 넣고 비벼준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맨 마지막에 우둔살(엉덩잇살)로 만든 육회와 함께 청포묵, 황포묵, 도토리묵, 상추, 시금치 등 갖은 고명을 얹는 것. 다 만들어진 비빔밥을 손님상에 내놓기 직전 그릇째 불에 올려 데운다. 돌솥밥을 연상시킨다. 황등면에서는 특이하게 유기그릇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토박이들은 유기는 기제사 등에 사용하는 것이라서 왠지 꺼림칙하게 여긴다. 유기는 망자의 몫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다들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사용한다.
황등비빔밥 4인방이 있다. 5일장(5·10일) 황등풍물시장 안에 있는 '진미식당' '시장비빔밥', 그리고 시장 근처에 있는 '한일식당', 가장 후발주자는 시장 내 정육점구이집으로 유명했다가 뒤늦게 점심에 한해 별미로 비빔밥을 냈던 '분도식당'이 그들이다.

◆대구 개정식당
1978년 오픈했지만 그 보다 5년 전에 대구백화점 옆에 있었던 한국투자신탁 지하 동방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전주비빔밥이란 이름으로 론칭된다. 개정이란 상호는 대구백화점 북문 앞에서 그랜드오픈할 때부터 사용한다. 81년 대구 최초의 정통 레스토랑으로 불리는 '아비뇽'이 중구 공평동에 등장한다. 아비뇽을 오픈한 오만근은 이후 '산마루' 레스토랑도 오픈하는 동시에 그의 재종형이자 금은방을 운영했던 귀금속 세공전문가 오정근의 아내 김미영이 운영하는 개정을 적극 응원해준다. 개정이 대구비빔밥의 선두주자로 나타나자 시민들은 쌍수로 반겼다. 그동안 이렇다 할 만한 비빔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프리미엄 비빔밥 시대를 열고 싶어했다. 그래서 전주비빔밥을 대구에 접목시킨다. 출발은 전주비빔밥이지만 대구의 비빔밥으로 변해왔다. 처음에는 고추장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맛을 위해 뺀다. 전주비빔밥보다 간이 약한 육회도 한 점 올려놓는다. 산채와 달리 일반 채소류는 들기름 대신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 부추는 삶지 않고 무쳐낸다.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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