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꿈꾸는 시] 김용락 '눌함(訥喊)'

입력 2025-06-30 06:30:00

시집 '푸른별' '하염없이 낮은 지붕' 외
평론집 '문학과 정치' '한류와 한국문학' 외

김용락 시인
김용락 시인 '눌함(訥喊)' 관련 이미지

〈눌함(訥喊)〉

의성 산불로

雲嵐寺 보광전 요사채 그 천년이 깡그리 탔다

보광전 광배를 이루던

꿀밤이 많던 다정한 천등산도

달빛 교교하던 가을밤의 열 겹 산능성도

장마철 우무에 쌓여 희미하던 산마을도

젊은 청춘의 추억도

다 탔다

인생사 제행무상이라더니...

보광전 앞마당 벚나무 아린 꽃망울이

확 불지옥을 뒤집어썼다

그렇게, 시커멓게 숯이 된 몸통을 비집고

안간힘을 쓰면서 고함을 지른다

세상을 밝히는 한 송이 꽃이다

(2025. 4. 12.)

*눌함(訥喊)은 루쉰(1881~1936)의 산문 제목에서 따 옴

김용락 시인
김용락 시인

<시작 노트>

운람사(雲嵐寺)는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 있는 천년 고찰이다. 신라시대(681)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우리 6남매 중 일찍이 고인이 된 맏누님이 20대 초 새색시로 그 산기슭의 농촌 마을로 시집갔다. 나에게는 여러 추억이 있는 사찰이다. 불탄 후 찾아뵈었더니 보광전 앞마당의 불탄 벚나무 밑둥치에서 시커먼 재를 밀치고 벚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생명의 그 질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