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교영] 이 시대의 '희망가'

입력 2025-05-28 20:08:09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가요 '희망가'의 앞 소절이다. 이 노래는 1920, 30년대에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고전이다. 시대(일제강점기)가 시대인지라 '희망'을 노래하지만, 가사는 암울하고 가락은 슬프다. '나라를 잃었는데,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이냐'는 물음은 허무적이기까지 하다.

'희망가'는 시대를 넘어 풍미(風靡)하고 있다. 여러 편곡(編曲)이 나왔고, 많은 가수들이 애창했다. 한대수, 들국화, 장사익, 김호중도 불러 우리를 위로했다. 나도 모르게 '희망가'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삶이 버겁고 시대가 어두울 때, '희망가'는 민심을 대변한다. 지금도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어지러운(풍진) 세상'에 놓여 있으니, 그 노래의 생명력이란 참 모질고 강하다.

국밥집 주인은 임차료를 내지 못해 변두리로 밀려난다. 혹독한 입시 경쟁을 거쳐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구직도 취직도 않고, 그냥 쉬는 청년이 50만 명이다. 미국발 관세(關稅) 전쟁으로 "수출이 막힌다, 경제가 죽는다"고 난리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합계출산율은 최저,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최고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 법치주의, 정의, 공정은 둘로 나뉜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저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원칙은 "법 앞에 만 명만 평등하다"란 말로 희화(戲化)되고 있다. 정말 '이 풍진 세상'이다.

원인은 정치에 있다. 책임도 정치에 있다. 그러나 책임지는 정치인은 없다. 선거 때 잠시 머리를 숙일 뿐이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온다. 29·30일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조기(早期) 대선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미안함이 없는 듯하다. '국민 통합'보다 여전히 '네 탓 공방'이다. 체면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이 혼돈(混沌)에서도 확실한 게 있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그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루쉰 소설 '고향'의 마지막 문장)

kimk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