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예술기행] 알함브라궁전

입력 2025-05-21 13:17:09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인 알함브라궁전.무어인 최고의 예술이라 불린다.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했던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궁전인 알함브라궁전.무어인 최고의 예술이라 불린다.

'나의 왕국을 잃은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이 아름다운 궁전을 다시 못 보는 것이다.' 1492년 그라나다 나스르왕조 마지막 군주이자 이베리아 무슬림 최후의 군주인 무함마드12세(보압딜, Boabdil)는 석양에 빛나는 알함브라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그 유명한 '무어인의 마지막 한숨(el ultimo suspiro del Moro)'이다. 이것은 또한 이사벨라여왕과 페르디난도왕의 레콩키스타(Reconquista, 재정복) 성공으로, 711년 서고트왕국을 정복한 이슬람 세력이 팔백 년 만에 이베리아반도에서 물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브롤터를 건너 사하라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1월인데도 부드러웠다. 시에라네바다산맥 갓길을 달려 도착한 알함브라는 빛바랜 주홍색, 덤덤하기 짝이 없는 밋밋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많은 건축가들이 뽑았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기타 연주곡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그 화려하던 트레몰로 주법의 음률은 무엇이었단 말인가란 생각이 채 끝나기 전에 정의의 문으로 들어가 맞닥뜨린 나스르궁전(Palacios Nazaríes)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무어인(북서아프리카 베르베르족과 모로코인들 등)들은 로마시대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요새를 구축해 성벽을 쌓고 토대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기독교세력과의 치열한 각축으로 입지가 좁아지면서 13세기경엔 안달루시아의 나스르왕조 외엔 모든 이슬람왕국이 이베리아반도에서 휩쓸려 나가 버렸고, 유일하게 남은 그라나다도 카스티야에 막대한 상납금을 지불하는 대가로 겨우 국체를 유지하는 상태였다.

1238년 무함마드1세가 왕궁을 짓기 시작해 백 년에 걸쳐 화려하게 가꾼 알함브라궁전은 이슬람 통치하의 이베리아반도 즉 '알 안달루스'의 황혼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무어인 최고의 예술이라 불리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궁전을 현재 광의적 의미로 특히 관광객들에겐 나스르궁전, 헤네랄리페, 카를로스궁전과 알카사바 그리고 산타마리아성당, 프란치스코회수도원까지 포함해 지칭되고 있다.

나스르궁전은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이다.
나스르궁전은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이다.

◆나스르궁전(Palacios Nazaríes), 왕의 거처

나스르궁전은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이었다. 세련된 아라베스크문양 타일과 정교하게 석회로 한땀 한땀 이어 만든 벌집 석회 천장이 압권인 '메수아르 방'은 왕의 집무실이며 그 옆 정사각형 방은 공식 접견실 '대사의 방'은 콜럼버스가 이사벨여왕에게서 신대륙탐험 임명장을 받은 곳이다.

나스르 궁전내부는 아름답고 대칭적인 이슬람 문양이 섬세하게 수놓고 있다.
나스르 궁전내부는 아름답고 대칭적인 이슬람 문양이 섬세하게 수놓고 있다.

사막에서의 유목이 주생활 형태인 무어인들에게 '물이 흐르는 곳이 천국'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래서 알함브라 곳곳에는 꽃이 가득 걸린 벽과 연못, 수로가 산재해 있다. 정면 직사각형 연못에 비치는 벽의 아치와 대칭을 이룬 아라야네스꽃이 가득한 파티오는 인도 타지마할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은 철저한 왕의 사적 공간으로 왕 이외의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종유석 형태의 무카르나 천장 장식이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두 자매의 방'이 있는 거처는 왕비나 후궁의 생활공간인 듯하고, 회랑을 둘러싼 가느다란 124개의 대리석 기둥은 우아하고 화려한 석회 세공으로 기둥머리를 모두 아치로 연결해 회랑에 선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사자의 중전은 회랑을 둘러싼 가느다란 124개의 대리석 기둥은 우아하고 화려하다
사자의 중전은 회랑을 둘러싼 가느다란 124개의 대리석 기둥은 우아하고 화려하다

방마다 아름다운 형태의 각 창들엔 그라나다 알바이신마을이 그림처럼 담기니 이 미학은 또 어찌하나. 중정에는 열두 마리의 사자가 커다란 원형 분수를 받치고 있는데 그 물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시간을 알린 물시계라고도 하며, 그 물이 아래 대리석 바닥 수로를 통해 각 방의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니 이 또한 놀랍도록 과학적이다.

헤네랄리페 정원엔 온갖 풀들과 꽃, 나무들이 수로를 따라 피어 있다.
헤네랄리페 정원엔 온갖 풀들과 꽃, 나무들이 수로를 따라 피어 있다.

◆헤네랄리페(Generalife), 왕들의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 정원엔 가히 기화요초(琪花瑤草)라 부를만한 온갖 풀들과 꽃, 나무들이 수로를 따라 피어 있다. 때는 1월 우리나라는 한겨울일 텐데 이곳은 풍요로운 천국과 다름없다. 이제 '붉은 성' 알함브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했던 밋밋한 빛바랜 주홍 벽들만 보인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양털로 된 천막에서 살던 유목민들이 겉치장보다 내부 인테리어에 이토록 뛰어나단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이프러스나무 사이로 분수마다 물이 떨어져 무지개를 이루고 중앙 수영장이 있는 넓은 파티오가 상큼하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 떨어지는 분수와 연못의 물 소리로 프란시코 타레가가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작곡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826년 마드리드 미국공사관으로 부임한 낭만주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은 이곳에 매혹되어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Tales of the Alhambra)'를 썼다. 이 책은 또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켜 그라나다로 몰려오게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알함브라를 비추는 달빛에는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다. 달빛 속에서 시간의 모든 균열과 틈, 모든 부패의 기미와 풍화의 얼룩은 사라지고, 대리석은 태초의 흰빛을 되찾으며, 길게 줄지어 선 기둥들은 밝게 빛나고 부드러운 광채는 홀들을 밝히며, 이윽고 궁전 전체가 아라비아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법의 궁전을 떠올리게 한다.' 옳은 말이다.

카를로스5세 궁전
카를로스5세 궁전

◆카를로스궁전과 알카사바, 알바이신 지구

합스부르크가문의 수장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며, 스페인국왕, 이탈리아군주 등 중근세 유럽에서 17개 국가의 왕관을 쓴 이가 있다. 카를로스1세(카를5세)다. 스페인 이사벨라여왕의 외손, 신성로마제국 막시밀리안1세의 친손으로 유럽 절반이 넘는 영토와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까지 역사상 가장 많은 땅을 상속받았고, 16세기 굵직굵직한 유럽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 왕관의 무게에 대한 과시욕이었을까. 그는 알함브라의 건물 몇 채를 허물고 거대한 르네상스식 궁전을 짓는다.(실제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정복과 재정복을 거치면서도 파괴되지 않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다소 아쉽지만 이 또한 역사인 것을 어찌하랴. 그저 알함브라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한껏 기대다 나온 탓인지 카를로스궁전 원형 중정이 다소 투박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따름이다.

성벽과 주춧돌만 남은 알카사바는 알함브라를 지키는 요새답게 이곳에서 가장 높다. 그라나다 정복 기념으로 이사벨라여왕이 종탑을 만들었고 나폴레옹군들이 막사를 치고 주둔했던 곳이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그라나다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슬람왕조의 거처였던 알바이신지구는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언덕 위 빛바랜 꽃잎처럼 집들이 펼쳐지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성니콜라스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선 일몰 무렵 더욱더 아름답다는 알함브라궁전을 볼 수도 있고 군데군데 만년설을 얹은 시에라네바다산맥을 바라볼 수 있다. 탄식하며 떠난 보압딜, 무함마드12세는 망명지에서 알함브라와 비슷한 궁전을 짓고 41년을 더 살았다.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시인 박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