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일 안 하고 편하게 사는 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는 내가 부럽다길래 그럼 넌 뭘 하면서 살고 싶은데, 라는 되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자본주의 실리에 눈이 밝아서 일찌감치 은행원이 된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는 음악과 책, 지금은 골프와 걷기로 취미도 극명하게 갈리는 그 아이와 난 성격뿐 아니라 모든 게 대척점에 있는 듯했다.
음식처럼 사람 관계에도 궁합이란 게 있다. 해물찜과 우유, 삼겹살과 메밀차 같은 상극의 관계는 소화불량과 복통을 일으키듯 결국 파국으로 끝날 것이라 여겼다. 친구와 난 만날 때마다 왜곡된 기억과 상반된 가치관을 두고서 매번 끊어질 듯 팽팽한 낚싯줄처럼 대치했다. 그런데 또 묘하게도 어느 순간 눈 녹듯 조금 전의 일을 까맣게 잊고서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팽팽했던 낚싯줄 끝에 딸려 온 대어를 합동해 끌어올린 것처럼 말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다 간 절친한 소설가 두 명이 있었다. 각각 단편소설 '동백꽃'과 '날개'로 한국 문단에 획을 그은 김유정과 이상이다. 구인회의 회원으로서 함께 '죽음'을 꿈꿨을 정도로 친했던 둘이지만, 문학작품의 성향만은 상극의 음식처럼 달랐다. 이상의 그것이 그로테스크하고 초현실주의적이었다면 김유정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서정성 위에 해학과 비애를 담은 경향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설가지만 이상은 실명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김유정'까지 집필하며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은행원인 친구와 글쟁이인 나는 매일매일 은행 안에서, 소설책 속에서 접점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집합처럼 만나면, 우리가 공유했던 과거와 사랑과 우정과 갈등을 놓고 피 터지게 언쟁하며 핏대를 세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것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 떳떳하다고 우긴다면 그건 불통의 아이콘이 된다. 기억의 곡해가 있다손 치더라도 상대가 상처 받았다면,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땐 미안했어. 사과하고 돌아서면 또 '레드썬'처럼 각별하게 서로를 애정한다.
지구 어느 별에서 떠돌다가 꽝 부딪친 행성들이 끝내 돌아서지 못하고 서로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도대체 상극일까, 상생일까.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면서도 친구는 그걸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별과 같아서 보이지 않을 때도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 먹어도 잠시 소화불량을 일으킬지언정 결코 파국으로 갈 수는 없다. 친구란 제2의 자아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김유정처럼 은행원과 소설가도 서로에게 있어 지구별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위안이다. 너무 다르고 너무 멀어도, 아무것도 변명하거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익숙하고 하찮아서 자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행성, 우정을 우리가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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