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시래기 된장에 무쳐 국을 끓인다
된장이 밀어 올린 익숙한 냄새가, 오월 꽃이
아니어도 좋다
이것은 오래 묵혀둔
기억이, 잠시잠깐 건너오는 것이다
된장을 먹다보면 어딘가 시큰거리는
울음이 삭아있는 것 같아
엄마는
이렇게라도
나를 만나러 온 것이리라
저 냄새를 그때는 몰랐었다
어쩌다 눈물겨운 때가 불현듯 있어
그런 날로 돌아가기도 하고
한 그릇, 시래기 국을 먹으면 그리운 것은 늘
새것처럼 와서 잠시 앉았다
가는 거다
◆시작(詩作)메모
어버이날이 만발한 오월이다. 너도나도 생전의 부모를 위해 붉은 카네이션 꽃을 달거나 들고 가는 풍경을 보면, 부모와의 이별을 한 시인은 할 말도, 할 일도, 없는 그런 오월을 맞이하는 내내 묻어둔 슬픔이 건너오는 오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시래기국을 끓이는 너머는 지는 꽃도 있지만 생각도 없이 마구 오는 꽃들도 많아서. 아니 많은 게 아니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저 꽃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몇날 며칠을 걸어온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꽃이 오는 무렵에는 아플 때가 많다. 뼈마디들에 봄물이 치대는 것 때문이 아니라 어버이날이 끼었기 때문이다. 이팝꽃도, 아카시꽃도 모두 흰 색이다. 흰 것들은 더러는 아픈 색이기도 해서, 시가 아니어도 마음을 부려놓을 행간이 천산북로 많다.
추억은 늘 우리들의 뿌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냥 늙은이의 등만 봐도 없는 부모님이 떠오르고 어릴 적 먹던 음식만 봐도 그들이 눈에 밟히는 서러운 봄날이기도 하다. 그렇다 오월은 시인에게 있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어머니와 연관된 모든 것들이 꽃들과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어디 슬픔이 저금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처럼 지난 추억은 시를 통과해 삶이 만들어지고 생애가 거울처럼 들어나는 것이기도 해서 열악한 정신을 자주 깨우고는 한다.
풍요로운 날들과 비루한 날들이 서로 점철되는 그 사이 열화 같은 슬픔의 형태는 과거를 자주 들먹이게 하는 서러운 재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의 제단 앞에 서면 불현듯 오는 어떤, 생의 관계가 더 철썩거릴 때가 있다고들 더러는 말한다.
시가 던지는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듯. 생의 미학적인 탐색이 독자와의 영합이 잘 이루어지는지 걱정이 앞서기에 시를 쓴다는 것은 여간 정신적인 노동이 아니다. 시를 떠나서는 살 수도 없고 시의 연기설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러나 시선은 늘 한 모서리로 향하기 바빴고 거기는 문장이 뚜렷한 시들이 웅덩이처럼 몰려있어 때로는 당황할 때도 있지만. 너스레 같은 잡동사니까지 한 문장으로 펼치는 날은 시의 근원이 어쩌면 된장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추억을 맞대는 날은 봄날이 우거진 속이다.
사물에 대한 욕심이 참 여러 계절을 내다버리게 한다. 그런데도 써야 한다는 책무는 또 다른 화자인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사물과 사물의 충돌을 밤새워 궁리하며 자갈돌 같은 단어 하나 찾아내는 일이 어쩌면 시인의 책무이기도 해서 우리는 함께 기억하며 앞으로 나간다.
벌써 복숭아, 자두 꽃이 지고 열매가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너무 빠른 꽃치레다. 누가 저들을 떠미는가, 꽃의 야단법석은 곧 끝날 것인데 그러고 나면 다음은 무엇이 달려오나, 밭둑을 걷다보면 자잘한 제비꽃이 바람의 시녀처럼 하염없이 일렁이는 저 목울대를, 가만히 흔드는 햇볕이 보라색인 걸 그때 알았다. 저렇게 혼합된 서로의 합이 잘 맞아서일까, 아니면 불편한 관계일까, 조그만 꽃잎이 단지 세상을 쓰고 있는 저 값은 얼마나 될까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도 한량없이 고맙다.
하늘 아래 첫 물인 것처럼 저마다 흔들리는 오월, 오랜만에 먹는 된장 시래기국도 말없이 저물고, 서러움도 저물고, 이 계절이 가면 다음은 무엇으로 채우나 하는 아주 소모적인 걱정도 한다.
장독대를 보면 부도탑처럼 공손하게 모아 쥔 어머니의 기도 같기만 해서 시인은 생각 많은 오월을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약력
-2003년 계간 '시안' 등단
-시집 '바닷가 오월' '다른 요일 지나갔다' 등
-대구시인협상 수상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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