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정두나 기자
"시민의 상상력으로 신청사의 모습을 그리고, 신청사의 입지도 오직 시민의 판단으로 결정합니다." 대구시의 자신만만한 시청 신청사에 관한 설명과 달리, 주민들은 답답한 가슴만 치고 있다.
지난 9일 대구시청 신청사 예정 부지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유독 쌀쌀한 데다가 비까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70여 명의 주민이 모여 강당이 복잡해졌다. 신청사의 미래에 쏟는 주민들의 관심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이날 주민들이 내놓은 가장 큰 걱정거리는 도로다. 달구벌대로에서 신청사로 연결되는 왕복 4차로 도로의 확장 계획이 없어, 교통 체증이 심각해진다는 우려다. 또 역사와 문화, 전통을 담은 랜드마크적인 신청사를 조성하는 게 목표인 만큼 청사 건립 이후 차량 통행량이 더욱 많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원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구시는 '현재로서는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도로 인근이 대부분 주거지인 탓에 천문학적인 보상 비용이 든다는 게 그 이유다.
주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 주민은 "분명 처음에 청사를 짓는다고 했을 땐 도로도 확장하고, 지하도도 판다고 해 주민들이 춤을 추며 환영했다"며 "이제 와서 돈이 없다며 도로 확장을 못 한다고 하니 당황스럽다. 지방채라도 발행해 빠르게 사업을 마무리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명을 들은 뒤 오히려 불안해하는 주민도 있었다. 정해진 게 없다 보니, 또 한 번 사업이 좌초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부지 결정은 지난 2019년 마무리됐지만, 이후 재원이 없어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다 보니 걱정은 더욱 몸집을 불렸다. 이날 대구시는 "오는 2030년에 완공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안심시켰지만, 주민들의 얼굴에서 수심은 지워지지 않았다.
어설픈 소통 방식 탓에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글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화면이 멀고 흐릿해, 주민들은 핸드폰으로 화면을 찍은 뒤 확대하며 설명을 들었다. 발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웅성거리며 서로 물어보느라, 주민설명회장 내부가 어수선해지기도 했다. 결국 발표 막바지에 이르러 "나이 든 주민들이 어떻게 내용을 다 이해하냐. 다음 번에는 인쇄라도 해서 주면 안 되겠느냐"는 부탁이 나왔다.
이날 현장에 나온 대구시 관계자들 역시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의 요구 사항이 제각각인 데다가, 예산이 한정돼 요구 사항을 다 들어줄 순 없어서다. 결국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주민과 타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검토하겠다, 반영하겠다'는 공염불을 외는 것으로는 안 된다. 작은 부분이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신청사 계획이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또 반영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그 이유를 주민의 눈높이에서 설명해야 한다.
허울뿐인 주민설명회도 뜯어고쳐야 한다. 방대한 청사 관련 계획과 예산 사정, 예상되는 환경 영향을 설명해야 하는데, 한 시간 남짓의 설명회를 준비한 것은 계산 착오다.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 노력이 싫다면, '오직 시민의 판단으로' 짓겠다는 슬로건은 과감히 뜯어내길 바란다.
다행히 사업 마무리까지 앞으로 5년이나 남아 있다. 이번 설명회는 아쉬움으로 얼룩졌지만, 다음 설명회는 다를 것이라 믿는다. 웃으며 모였던 주민들이 시름 깊은 얼굴로 돌아가는 일이 다시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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