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악플 모아 차은경 판사에게 보여주고 모욕죄로 송치

입력 2025-05-07 07:30:00

지난 1월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 놓여진 근조화환. 연합뉴스
지난 1월1일 서울서부지법 앞에 놓여진 근조화환. 연합뉴스

경찰이 차은경(57)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비방 글을 인터넷에 올린 누리꾼을 상대로 선행 수사를 벌인 뒤 차 판사에게 비방 글을 보여주고 고소장을 받아 검찰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죄목은 모욕죄였는데 모욕죄가 당사자 고소 의사가 필요한 친고죄이기에 먼저 수사를 벌이고 나중에 고소장을 받은 것이다. 차 판사는 손 글씨로 고소장을 작성했다.

7일 매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인터넷에 차 판사 비방 글을 올린 A 씨를 모욕 혐의로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의견 송치했다. 기소의견 송치란 경찰이 범죄 혐의점을 파악해 "기소해 달라"고 검찰로 넘기는 걸 뜻한다.

경찰 등에 따르면 A 씨는 1월19일 오전 3시1분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내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에 "차은경 시X련아!!! ㅠㅠ"란 게시물을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1월19일은 차 판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날이었다.

경찰이 선행 수사로 이 사건을 진행해 왔다. 경찰 포털 등에 따르면 경찰이 이 사건에 착수한 건 지난 1월31일이었고 고소장이 접수된 건 3월6일이었다. 고소장을 보면 경찰이 디시인사이드 등지에 올라온 차 판사 비방 글을 수집한 뒤 차 판사에게 범죄일람표 형태로 제공했고 차 판사는 손으로 직접 쓴 고소장을 경찰에 넘겼다.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가 작성한 고소장. 경찰청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가 작성한 고소장. 경찰청

차 판사는 고소장에 "고소인은 준법의식이 투철한 시민들의 112신고로 범죄일람표 게시글을 직접 접하게 됐고 해당 게시글을 읽고 깊은 상처를 입는 경험을 하였습니다"라며 "말과 글로 타인을 아프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는 않지만 머릿속에 각인되어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익명성을 방패 삼아 이루어지는 협박과 모욕 범행은 매우 중하게 처벌되어야 합니다.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적었다.

경찰은 일반적으로 고소나 고발 사건을 접수 받은 뒤 수사를 진행하지만 큰 사건의 경우 먼저 수사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인터넷 게시글을 가지고 경찰이 선행 수사에 나선 것을 두고 '무리한 수사'란 반응이 나왔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반인이 댓글 남긴 걸 먼저 수집한 뒤 피해 당사자에게 보여주고 나중에 고소장을 받는다는 게 좀처럼 보기 쉬운 장면이 아니다"라며 "판사가 사회에서 얼마나 대우 받는지, 경찰 행정력이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매일신문 DB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매일신문 DB

경찰의 의욕과 달리 결과는 좋지 못한 상태다. 고소장에서 볼 수 있듯 경찰은 일부 누리꾼을 협박 미수 혐의로 검찰에 넘긴 바 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14일 협박 미수 혐의로 대구에 거주하는 B 씨를 기소 의견 송치했다. B 씨는 1월19일 네이버 카페에 "[부정선거척결] 차은경 신변보호 들어갔다네요"라는 제목 아래 "대통령 건드렸으면 니 인생도 걸어야지. 너랑 니 가족 전부 무사하지 못할꺼다"라는 글을 올린 혐의를 받았다. 광주지방경찰청도 인지 수사로 이 사건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혐의 없음 처분이었다. 광주지검은 사건을 넘겨 받은 지 2주도 안 된 3월27일 "협박죄는 해악을 끼치겠다는 내용을 상대에게 도달시키려는 고의를 전제로 한다"며 "행위자의 언동이 단순한 감정적인 욕설이나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해 가해 의사가 없다는 점이 명백할 땐 협박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 B 씨가 글을 게시한 건 일시적 분노의 표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 차은경에게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이 글을 차은경에게 도달시킬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