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도구, 불, 무덤… '인간다움'의 시작을 묻다

입력 2025-05-02 06:30:00 수정 2025-05-02 08:44:09

[책] 인류 최초의 순간들
니콜라 테상디에 지음/박선영 번역/산지니 펴냄

고인돌. 게티이미지뱅크
'인류 최초의 순간들' 표지

우리는 살면서 종종 '인간다움'이라는 말을 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죽음을 애도하며, 상징을 기록하는 존재다. 하지만 과연 '인간다움'의 기준과 시작점은 과연 어디였을까?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이자 고고학자인 니콜라 테상디에는 '인류 최초의 순간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류학과 고고학의 관점으로 살펴본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죽음을 애도하며, 상징을 기록하는 존재다. 저자는 인류의 기원을 이루는 30가지 순간들을 선별해 '최초'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요소들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탐구한다.

이 책은 최초의 '흔적'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케냐 로메크위에서 발견된 330만 년 전의 뗀석기를 인간의 '최초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 우리는 먼저 "도구의 사용이 인간만의 특성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는 곧 "인간이란 무엇으로 정의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원숭이도 도구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만으로 인간의 기원을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의 '최초의 흔적'으로서 도구를 바라보려면 단순한 손의 연장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것은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하는 사고의 시작이며, 이는 곧 '시간'을 인식하는 존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불 또한 생존의 도구였지만, 그것을 나누고 지키고 전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공동체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한다. 생존을 넘어 관계와 규칙, 나눔의 개념이 태동한 순간이었다.

이렇듯 저자는 독자가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좇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각각의 장면이 가진 인류학적, 철학적 의미에 천착하도록 유도한다.

이어 무덤의 등장, 동굴 벽화의 탄생 같은 역사적, 고고학적 주제가 이어진다. 또 최초의 식인종, 지도자, 언어, 부부, 범죄, 수술, 신, 기계, 보석 등 사회의 발전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따라간다.

저자는 매 장마다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언어는 왜 생겨났을까?", "가족의 기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예술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라는 물음은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우리는 지금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있는가?"를 묻는다.

'인류 최초의 순간들'은 전문적인 고고학, 인류학 내용을 담고 있지만, 대중적인 방식으로 서술한다. 또 각 장마다 짧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거대한 역사서라기보다 아주 사소한 최초의 순간들의 모음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마주했던 고민과 감정을 상상하도록 이끈다.

장면들 속에는 오늘의 우리가 지닌 모든 것 즉, 생각하는 법, 사랑하는 방식, 슬픔을 나누는 태도가 담겨 있다. 먼 과거의 인류의 최초를 더듬어가다 보면 동질감과 공감을 느끼게된다.

그리고 언젠가 어느 장소에서 누군가가 불씨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누며 느꼈던 따뜻함, 또 죽은 이를 땅에 묻으며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싶었던 그 마음들이 지금 우리가 품고 있는 연대와 공감의 뿌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책을 전부 읽고 나서는 이 책에 언급하지 않은 다른 최초의 순간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인류의 긴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인류 최초의 순간들'은 그 긴 시간 속에서 작지만 찬란한 첫 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최초의 인간'을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272쪽, 1만9천800원.

고인돌.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