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세권의 역설'…산불에 위협 받는 도심, 대구형 대응 체계 갖춰야

입력 2025-04-29 17:03:01 수정 2025-04-29 20:51:51

완충지대·수분관리·조기 감지·시민 교육 '4대 방어선' 구축 시급
'도심형 산불' 확산, 구조적 대응 전환 필요

대구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9일 대구 북구 산불 현장의 산림이 잿더미가 된 가운데 헬기가 물을 투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29일 대구 북구 산불 현장의 산림이 잿더미가 된 가운데 헬기가 물을 투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도심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이 기존 대응 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산과 주거지가 맞닿은 '도심형 산불'은 초기 확산이 빠르고, 인명·재산 피해 위험을 크게 높인다. 전문가들은 도시 계획의 재설계, 예방 중심 선제 대응, 조기 감지 체계 구축, 시민 안전 교육 강화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지난 28일 대구 북구 함지산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은 '도심형 산불'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대구시에 따르면 인구 밀집 지역을 향해 번진 불길로 주민 6천500여 명에게 대피 안내가 이뤄졌고, 이 중 600여 명이 7곳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구의 분지형 지형 특성상 초기 확산 위험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박영대 대구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민가와 숲이 맞닿아 있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단 한 번의 발화만으로도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기후변화 악화로 인해 산불 리스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며 "과거 숲세권이 주거지 가치를 높이는 요소였다면, 지금은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구조적 대응 전환이 시급하다. 박 교수는 완충지대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민가와 산림 사이 일정 간격을 두고, 촘촘한 숲 대신 공원형 녹지를 조성해 불씨 확산을 물리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가 인근에 물탱크나 자동 분사시설을 설치해 수분 함량을 15% 이상 유지하면, 불똥이 날아와도 발화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초기 대응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김 교수는 "건축물 화재는 5분 내 현장 도착이 가능하지만, 산불은 신고 지연, 협소한 진입로, 장비 접근성 문제로 초기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교수는 조기 감시 체계 구축을 강조했다. 입산 초입지에 폐쇄회로(CC)TV를 촘촘히 설치하고, 드론 감시 체계를 적극 도입해 "초기 화점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피해를 7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구조적 예방 설비로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제안했다. "농가 주변, 주요 등산로 초입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토양 수분을 관리하면 발화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며, "대형 산불 복구 비용(1조 원 이상)을 고려하면 훨씬 경제적인 투자"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도시개발 단계에서 산불 리스크 평가를 의무화하고, 산불 진행 방향을 고려한 맞춤형 소방시설 배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산 인접 지역 개발 시 산불 위험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적 정비를 촉구했다.

두 교수는 입을 모아 법적 책임 강화도 강조했다. 이번 대구 산불 역시 입산 통제 구역에서 발생했다. 박 교수는 "행정 명령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발생한 경우, 실화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산책로 등 접근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화기 소지 금지와 흡연 금지를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 안전교육 강화도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김 교수는 "재난 대응 4단계(예방-대비-대응-복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며, "시민들이 산불 대피 요령, 가스 차단법, 초기 대응법 등을 체계적으로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각장애인, 고령자 등 이동 취약계층을 위한 2인 1조 대피조 편성을 사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영대 교수는 "도시형 산불은 기존 산림 재난과 전혀 다른 대응 방식을 요구한다"고 단언했다. "도시계획부터 재난안전 관리까지 모든 체계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병수 교수도 "불이 난 뒤 진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불이 나지 않게 하는 예방이 핵심"이라며,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 불씨도 다시 보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박영대 대구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박영대 대구대 산림자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