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조두진] 선거에 지면 찌그러지는 것

입력 2025-04-28 20:16:38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대통령 궐위(闕位)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통령 권한 행사를 헌재가 막았으니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責務)를 진다'고 규정한다.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대통령과 꼭 같이 헌법 수호 책무를 진다는 것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리 없다. 헌재는 헌법기관이다. 한 권한대행의 헌재 후보 지명은 헌법재판소 기능 정상화라는 헌법 수호 행위였다. 이것은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원식 국회의장과 변호사 1명이 문제 삼았고, 헌재는 이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아직 본안 판단이 남아 있지만, 효력 정지 가처분 인용으로 사실상 6·3 대선 전에 헌법재판관 임명은 물 건너갔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가 야권의 비판과 헌재 결정에 의해 막힌 것이다.

헌법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다. 이는 권한대행의 권한이 대통령 권한과 동일하다는 말이다. 헌재는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에 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을 지명·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류의 명제(命題) 외에 세상에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정할 수 없다'는 식의 판결은 '무엇이든 해석하기 나름이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법 조항'이 아니라 '해석'과 '평가'로 결정할 것 같으면 법률 전문가인 판사가 재판할 필요가 있나. 세상 경험 많고 현명한 사람이 재판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충격이었다. 당시 재판부가 들고나왔던 "직무 유기, 협박 발언은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나, 헌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지명·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논란이 큰 정치적 사건에 대해 법원은 판단하지 않겠다'는 말, 또는 '힘센 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13세기 이전 중세 유럽에서 횡행(橫行)했던 '결투 재판'은 민사·형사 사건의 유·무죄를 '결투'로 가린 것이다. 이긴 자는 신(神)이 선택한 자이므로 옳다는 논리였다. 작금(昨今)에 법원과 헌재의 판결을 보면 그 야만적 재판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활한 것 같다. 헌재의 효력 정지 가처분 9대 0 인용이나 동영상과 녹음 파일 증거가 있음에도 이 전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무죄, 위증교사 1심 무죄 선고 등이 그런 예다.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사실상 '무죄 선고'나 다름없다. 6·3 대선에서 이 전 대표가 승리하면 그의 '허위 사실 공표죄'는 공중분해될 테니 말이다. 대법원의 '책임 회피'라고 본다.

재판부가 어떻고, 법률이 어떻고, 법관의 양심이 어떻고… 해 봐야 공허(空虛)하다. 21세기 한국에서 정치 관련 재판은 중세 유럽의 '결투 재판'과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이긴 자가 옳다. 선거에서 지면 찌그러지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하시라. 투표만이 이 모든 무법 같은 사태를 정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