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그리스 도편추방 탄핵제가 폐지된 이유

입력 2025-04-06 13:58:16 수정 2025-04-06 19:17:06

초기 민주 체제 방어 장치 '도편추방' 차츰 정치적 도구 전락
아테네서 독재자 출현 방지용 도입…국민 6천명 이상 특정 인물의 이름
도자기 파편 조각에 적어내면 탄핵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정계선, 김복형, 정정미, 이미선, 문형배,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 헌재 재판관. 연합뉴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정계선, 김복형, 정정미, 이미선, 문형배, 김형두, 정형식, 조한창 헌재 재판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했다. 민주당은 2023년 11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소추 발의를 시작으로 지난 3월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 탄핵 소추 발의까지 1년 4개월 남짓 무려 30명의 고위공직자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 공화국이다. 탄핵제도의 기원인 고대 아테네 도편추방제가 독재 방지용으로 도입됐다가 왜 폐지됐는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살펴본다.

페이시스트라토스 제단. 아테네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 1세의 손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아버지인 히피아스가 아테네 참주로 있던 시기 B.C. 520년~B.C.510년 행정관 취임 기념으로 아폴론 신전에 기부한 제단. 아테네 비문 박물관
페이시스트라토스 제단. 아테네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 1세의 손자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아버지인 히피아스가 아테네 참주로 있던 시기 B.C. 520년~B.C.510년 행정관 취임 기념으로 아폴론 신전에 기부한 제단. 아테네 비문 박물관

◆B.C. 560년 경 아테네에 독재자 '참주' 등장

서양문명의 남상(濫觴) 아테네. 아테네에 가본 적이 없는 미국 작가 애드가 앨런 포가 1831년 18살 때 쓴 시 『헬레네에게(To Helen)』의 개정판이 그의 사후 1840년 나왔다. 여기에 그 유명한 "영광은 그리스 것이요, 위대함은 로마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영광스러운 그리스 역사의 흔적을 찾아 아테네 비문 박물관(Epigraphic Museum)으로 가면 「페이시스트라토스 제단(B.C. 520~B.C. 511)」이 고색창연한 빛을 발한다. B.C 560년 아테네 민주정치를 뒤엎고, 참주(僭主, tyrant, 독재자)가 된 페이시스트라토스 1세의 손자가 행정관(Archon) 취임 기념으로 아폴론 신전에 기증한 제단이다. 2500년 넘은 독재자 가문의 유물이 씁쓸하다.

「티라노크토노이(Tyrannoktonoi, 참주살해 시도 혁명가들)」. 아리스토게이톤(오른쪽)과 하르모디오스. B.C. 510년 안테노르 원작 청동상을 B.C. 470년 크리티오스와 네시오테스가 재제작한 뒤, 2세기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대리석으로 복제한 유물.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티라노크토노이(Tyrannoktonoi, 참주살해 시도 혁명가들)」. 아리스토게이톤(오른쪽)과 하르모디오스. B.C. 510년 안테노르 원작 청동상을 B.C. 470년 크리티오스와 네시오테스가 재제작한 뒤, 2세기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대리석으로 복제한 유물.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B.C. 514년 참주 추방 시도 민중 혁명 실패

그리스인들이 B.C. 6세기 건립한 나폴리(Napoli, 새도시 NEA POLIS). 시내 중심의 고고학 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로마 교외 티볼리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빌라에서 출토된 조각 「티라노크토노이(Tyrannoktonoi, 참주살해 시도 혁명가들)」가 맞아준다. 2명의 이름은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

B.C. 510년 안테노르가 제작한 청동상을 B.C. 470년 크리티오스와 네시오테스가 재제작한 뒤, 이것을 2세기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대리석으로 복제한 짝퉁이다. 하지만, 2천여 년이 흐르니 더없이 소중한 유물로 대접받는다.

페이시스트라토스 1세가 B.C 527년 사망하면서 아들 히피아스가 참주 자리를 이어받았다. 사실상 왕정이 된 셈이다. B.C. 514년 아테네의 최대 축제인 판아테나이아 제전(수호신 아테나 기념 제전) 때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 주도의 민주혁명이 일어난다. 결과는 실패. 하르모디오스는 현장에서 살해되고, 아리스토게이톤은 체포돼 고문 속에 처형됐다.

아크로폴리스 구 파르테논 신전 터. 오른쪽 공터가 구 파르테논 신전터다. B.C. 510년 참주 히피아스와 일족은 구 파르테논 신전에서 민주혁명 세력과 스파르타 연합군에 맞서 농성했다. 구 파르테논 신전은 B.C.480년 페르시아 전쟁 때 불타 파괴됐다. 왼쪽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와 평화조약이 체결된 뒤, B.C. 437년 더욱 크게 재건축한 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 구 파르테논 신전 터. 오른쪽 공터가 구 파르테논 신전터다. B.C. 510년 참주 히피아스와 일족은 구 파르테논 신전에서 민주혁명 세력과 스파르타 연합군에 맞서 농성했다. 구 파르테논 신전은 B.C.480년 페르시아 전쟁 때 불타 파괴됐다. 왼쪽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와 평화조약이 체결된 뒤, B.C. 437년 더욱 크게 재건축한 신전이다.

◆B.C 510년 파르테논 신전에서 농성하던 참주 가문 추방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서 B.C. 510년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참주 통치가 종말을 고한다. 민주주의 지도자 클레이스테네스가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에게 부탁해 스파르타 군대로 참주 가문을 내쫓은 것이다. 참주 히피아스는 전 재산을 갖고 해외로 망명하는 조건 아래 아크로폴리스 농성을 풀고, 적국 페르시아로 간다.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참주 정치는 2대 50년 만에 끝났다. 아테네는 클레이스테네스 주도로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민주개혁을 일궈냈다. 그중 하나가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 Ostracism)라는 탄핵제도다.

도편추방제에 사용된 도편(Ostrakon)들. B.C. 5세기.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도편추방제에 사용된 도편(Ostrakon)들. B.C. 5세기. 아테네 아고라 박물관

◆B.C.508년~B.C.504년 경 도편추방 탄핵제도 도입

파르테논 신전에서 아고라로 내려오면 아고라 박물관에 이른다. 여기에 사람 이름이 적힌 도자기 접시(ostrakon)가 온전한 모습, 혹은 깨진 상태로 진열됐다. 독재자 출현 방지를 위해 만든 도편추방제 유물이다.

민회(ekklesia)에서 6천 명 이상 국민이 특정인 이름을 적어내면 탄핵된다. 도편추방 결정 10일 이내에 아테네에서 10년간 쫓겨난다. 재산권은 보존된다. 하지만, 도편추방제는 경고용으로 제정됐을 뿐 시행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마라톤 전투 순국 시민 병사 기념 무덤. B.C. 490년 페르시아 침략 전쟁 때 마라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사망한 아테네 시민 병사 492명을 기리는 합동 무덤이다.
마라톤 전투 순국 시민 병사 기념 무덤. B.C. 490년 페르시아 침략 전쟁 때 마라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사망한 아테네 시민 병사 492명을 기리는 합동 무덤이다.

◆B.C.490년 페르시아 전쟁 마라톤 전투에 참주 복귀 시도

아테네 북서쪽 42.195km 지점 마라톤으로 이동해 보자. B.C 490년 페르시아 전쟁 마라톤 전투에서 순국한 492명의 아테네 시민 병사 합동 무덤이 거대한 위용을 뽐낸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현장에 시신을 매장한 기념 무덤이다. 이때 침략군 페르시아의 대군을 인솔하고 온 인물은 놀랍게도 20년 전 쫓겨났던 참주 히피아스. 80살 고령으로 참주 복귀를 노리며 매국노가 돼 페르시아군의 앞잡이가 나타났다. 놀란 시민들이 도편추방제를 실행한다.

프닉스 언덕. 매년 이곳에서 민회를 열고 도편추방제를 실시할 것인지 결정했다. 이곳 민회에서 도편추방제 실시가 결정되면 본투표는 아고라에서 진행됐다. B.C487년 이곳에서 인류 역사 최초의 탄핵, 즉 도편추방 투표 실시가 결정됐다. 맞은편 언덕이 아크로폴리스다.
프닉스 언덕. 매년 이곳에서 민회를 열고 도편추방제를 실시할 것인지 결정했다. 이곳 민회에서 도편추방제 실시가 결정되면 본투표는 아고라에서 진행됐다. B.C487년 이곳에서 인류 역사 최초의 탄핵, 즉 도편추방 투표 실시가 결정됐다. 맞은편 언덕이 아크로폴리스다.

◆B.C. 487년 참주 출현 막기 위해 도편추방 실행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맞은편 500여m 떨어진 곳에 프닉스(Pnyx) 언덕이 솟았다. 프닉스 언덕에서 열린 민회가 매년 '올해 도편추방 실행' 여부를 결정했다. 실행이 확정되면 2달 안에 아고라에서 다시 민회를 열어 투표하는 방식이다. 마라톤 전투 3년 뒤, B.C 487년 프닉스 언덕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탄핵(도편추방) 실시가 결정됐다.

2달 뒤 아고라에서 탄핵 투표가 열렸다. 도편추방 당한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네 정치제도사』 22장에 "최초의 도편추방 대상은 히파르코스. 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 일원"이라고 기록된다. 3년 전 페르시아 침략의 앞잡이로 참주 자리 복귀를 노리던 히피아스(페이시스트라토스 가문)의 친척 히파르코스다.

메카클레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86년. 크산티포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84년. 아리스테이데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82년. 테미스토클레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71년. 아고라 박물관.(왼쪽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
메카클레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86년. 크산티포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84년. 아리스테이데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82년. 테미스토클레스 탄핵 도편(오스트라콘). B.C. 471년. 아고라 박물관.(왼쪽 위에서 부터 시계방향)

◆70년간 8명에서 최대 13명 도편추방 탄핵

아고라 박물관으로 다시 들어간다. 1930년대 아고라 북서쪽에서 발굴된 대량의 도편추방 투표 도자기 파편들이 민주주의 역사를 웅변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테네 정치제도사』, 로마시대 2세기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기록에 나오는 도편추방 탄핵 인물은 8명이다.

기록에 없지만, 도편 유물에 이름이 적힌 사람까지 합치면 최대 13명이다. 히파르코스에 이어 다음 해 B.C 486년 메가클레스, B.C. 484년 크산티포스(페리클레스의 아버지), B.C 482년 아리스테이데스, B.C. 471년 페르시아 전쟁영웅 테미스토클레스, B.C. 461년 키몬의 탄핵 도편이 민주주의의 엄중함을 증언한다.

아테네 아고라. 프닉스 언덕에서 도편추방제 투표 실시가 결정되면 실제 탄핵 투표는 이곳 아고라에서 진행됐다. B.C. 487년 인류 역사 최초로 히파르코스가 도편추방, 즉 탄핵당했다.
아테네 아고라. 프닉스 언덕에서 도편추방제 투표 실시가 결정되면 실제 탄핵 투표는 이곳 아고라에서 진행됐다. B.C. 487년 인류 역사 최초로 히파르코스가 도편추방, 즉 탄핵당했다.

◆B.C. 417년 도편추방 탄핵제가 중단된 이유

도편추방제는 B.C. 417년 급진 민주주의자 히페르볼로스 탄핵을 끝으로 폐지된다. 로마 시대 플루타르코스는 『영웅전』에서 히페르볼로스가 대중에게 '수치와 조롱'의 대상이 돼 도편 추방됐다고 기록한다. 플루타르코스는 또 B.C. 471년 테미스토클레스의 경우 '대중의 질투와 견제', B.C. 482년 아리스테이데스는 '너무 정의롭다'는 이유로 추방되는 등 도편추방제가 독재자 탄핵 취지를 넘어 대중의 정치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측면이 컸다고 지적한다.

아테네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영국의 로즈(P.J. Rhodes, 2004)는 "히페르볼로스 탄핵은 제도의 신뢰를 무너트렸다", 아테네 연구 권위자인 덴마크의 한센(M.H. Hansen, 1991) 역시 "도편추방은 초기 민주 체제의 중요한 방어 장치였지만, 차츰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미국 출신의 영국 고대사학자 핀리(M.I. Finley, 1973)는 "감정적 대중 정치에서 보다 절차적인 통제 수단 즉 재판에 의존하며 도편추방제는 사라졌다"고 분석한다. B.C.5세기 중엽 아고라에 법정(Heliaia)이 생겨 감정적 탄핵 대신 엄정한 법의 심판으로 이동해 갔다는 의미다.

◆1년 남짓 30번 줄 탄핵... 누가 국헌문란 세력인가?

1년 4개월 남짓 30번 줄 탄핵도 모자라 모든 국무위원 탄핵 발언이 횡행하는 대한민국. 지구촌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무도한 탄핵 정치가 자행되는가... 오죽하면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사건 변호인 김필성 변호사가 SNS에 지난 3월 30일 "국무회의 무력화 목적으로 탄핵을 다수 진행하는 것은 위력으로 헌법기관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가 지웠을까.

대한민국 [형법 제87조]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내란죄로 처벌한다. '국헌 문란 목적이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적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한다. 민주당은 국헌 문란에서 자유로운가?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