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더 열전] 고홍선 호남예술원 원장 "지두화 전수·영호남 예술 컬래버 작업 남은 숙제"

입력 2025-04-13 15:24:04 수정 2025-04-13 19:18:57

지두화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전수자, 서예가, 조각가, 역학자 등 종합예술인
2000년 대구에서 호남예술원 설립..남도문화 저변 확대, 후학 양성, 영호남 문화교류
"영남과 호남 예술 결합한 영호남예술 창달에 힘쓸 것"

고홍선 호남예술원 원장
고홍선 호남예술원 원장

청가(靑家) 고홍선(64) 호남예술원 원장은 지두화(指頭畵)의 대가이자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전수자다. 서예와 조각, 민속학, 역학, 풍수지리학에도 능해 종합예술인이라는 칭호가 딱 들어맞는다.

고향은 전남 강진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광주와 서울에서 신학대학교를 다녔고 몇 년 간 전도사를 하다 문화예술로 길을 틀었다. 전통문화 보존회인 호연회(초대회장)를 만들어 서울 인사동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도 했지만 아내의 향수병 때문에 2000년 처가가 있는 대구로 내려왔다. 이후 서구 평리동 자택에서 호남예술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그 자신의 예술활동은 물론 남도문화의 저변 확대, 후학 양성, 영호남 문화교류 등에 힘쓰고 있다.

평상시 유건을 쓰고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는 고 원장은 "선대 대대로 서당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자란 탓에 여섯 살에 천자문을 떼고 서예를 익혔다"고 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재능도 남달라 일찌감치 당대 유명한 스승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아홉 살 때 의제 허백련 선생의 문하인 연진회에 들어가 동양화를 배웠고, 12살 때엔 서편제의 마지막 전수자인 오병수(심청가 예능보유자) 선생에게서 단가와 심청가를 사사했다.

장성해서는 진봉규·박동진 명창으로부터 춘향가를 사사해 상도 여럿 받았다. 서예는 남도서예의 대가 차유전·최봉수 선생에게 사사했고 이를 자신만의 서체인 악필(握筆)서체(두 자루의 붓으로 한 번에 써 내려가는 일명 청가체)로 발전시켰다.

붓이 아닌 손가락과 손톱으로 그리는 지두화는 33년 전 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시작했다. 지두화는 중국 청조시대의 화가 고기패가 창안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활동했던 심사정이나 최북, 허유 등의 그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서민예술이라며 양반계층에서 천시하는 바람에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지나며 맥이 끊겼다. 이 지두화를 그는 서책을 스승 삼아 독학으로 습득,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전통 민중예술로 선보이고 있다.

30대 후반에는 대통령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등에 역학과 풍수지리 자문을 했던 청오 지창용 씨를 7년 간 따라다니며 관상학, 풍수지리학, 역학 등을 배웠다. 이를 기반으로 지두화와 서예 등에 접목하고 민속학 강의도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자신이 개척한 지두화와 악필서체를 후세에 전수하고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영남과 호남 예술의 콜라보 작업도 남은 숙제다.

고 원장은 "영남과 호남 예술을 접목해 영호남예술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달할 것"이라며 "후학 양성은 소명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일조하고 싶다"고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