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묻다, 가짜로 존재하다…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입력 2025-04-03 13:11:55

[책] 혼모노
성해나 지음/창비 펴냄

세대갈등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 코리아
'혼모노' 책 표지

혼모노(本物). 일본어로 '진짜'를 뜻하는 단어의 음차 표기로, 본래 '진짜 중의 진짜'를 뜻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녔지만 한때 인터넷상에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과한 '오타쿠'를 조롱하는 용어로 쓰이며 변질되기도 했다. 이처럼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호도되고 그 경계가 흐려진 시대에, 우리는 지역·정치·세대 등 다양한 기준으로 계속해서 선을 긋고 서로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 작품상, 2024 김만중문학상 신인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지난해에는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선정한 '2024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로 뽑힌 작가 성해나의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가 출간됐다. 그는 작품마다 치밀한 취재, 정교한 구성, 입체적인 캐릭터 위에 강렬하고도 서늘한 서사를 얹어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고 새로운 세대의 리얼리즘을 개척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번 소설집 '혼모노'에 이르러서는 더욱 예리해진 문제의식과 흡입력 넘치는 서사를 가지고 왔다. 총 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책의 작품들은 소설집 제목처럼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표제작 '혼모노'는 30년 차 박수무당 '문수'와 스무살 남짓의 젊은 무당 '신애기'의 대립을 그린다. 소설의 화자이자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수할멈을 모셔왔던 중년의 문수는 어느 날 자신에게서 할멈이 떠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때마침 앞집으로 이사 온 신애기는 할멈이 자신에게 왔다고 말하며 문수의 눈에는 마치 할멈과 하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무당으로서 자신이 '진짜'라고 믿고 있던 문수의 믿음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다가온다. 이후에도 할멈과 통하지 않는 그는 '가짜' 무당일지라도 '진짜'인척 하려 애쓴다. 모형 작두를 구하면서도 진짜 무당의 자존심을 부리기도 하고, 자신을 가짜라고 조소하는 신애기에 분해하면서도 동시에 그 아이의 가정환경, 어린 나이에 무당을 시작한 데서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는 등 마음을 쓴다. 분노와 공감, 허상과 진심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자꾸만 자문하게 된다.

끝으로 문수는 신애기와 함께 굿판에 선다. 그 의뢰는 본래 자신의 고객이었던 의원이 맡긴 것이었으나, 문수와 할멈이 통하지 않음을 눈치챈 의원은 신애기로 의뢰 대상을 바꾼 일이었다. 문수는 자기 것이었지만, 결국 자기 것이 아니게 된 자리에서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살벌하게 굿판을 펼친다.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본문 153쪽)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흔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신구 세대 간의 반목을 고스란히 드러낸 표제작처럼 책은 개인의 욕망과 번민을 들여다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대 갈등이나 전통과 현대의 대립, 윤리의식, 이해관계 등의 사회적인 쟁점에도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우리가 손쉽게 진짜라고 여기는 것들의 이면에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배우 박정민은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추천사로 책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인물들이 실제로 돼보지 않고선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면서도 명료하며,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들로 가득하다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소설 속 세상 한 편 한 편을 선명하게 그리다보면 어느새 책 한 권이 끝나있다.

결국 '혼모노'가 멈춰 서는 곳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모호한 경계일 것이다. 완벽한 정답이나 오답, 선과 악을 나눌 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판별이 아닌 진실을 계속 찾아나가는 것이 아닐까. 368쪽, 1만8천원.

세대갈등 관련 이미지. 클립아트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