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수성못길·수성호텔 만든 대구 재벌가 3세
일신토건·호텔수성 창업주 집안…유복한 환경에서 목표 없이 살아
풍족했지만 결핍 많았던 어린시절, 술 게임 등 과소비 하며 방탕하게 살아
태국 유학시절 마약에 손 대면서 밑바닥까지…마약사범되자 '정신 번뜩'
세차 용품·마프라·유튜브 등 성공…조부 성실함·부친 결단력 큰 도움
시련 겪어도 끝까지 포기 말기를
수성못, 호텔수성에 추억이 없는 대구인들은 없다. 두 곳은 지금도 여전한 대구 대표 랜드마크다. 수성못길·동대구로 등을 만든 일신토건 창업주의 손자이자 호텔수성 창업주의 아들이 이재열 ㈜대흥아이엔씨 대표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고 했던가.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 탓에 이 대표는 점점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는데. 현재는 차량용품 '마프라'의 항국 총판을 맡는 등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이 대표. 지난 19일 그를 만나 밑바닥부터 다시 일어선 대구 재벌 3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재여리의대흥미진진'의 인기가 높다. 특히 <부자 3대 못 간다. 바닥부터 다시 일어선 지방재벌 3세의 하루>가 조회수 46만회를 찍었다. 소회가 어떤가.
▶알고리즘 덕에 반짝 행운을 맛본 것 같다. 다른 영상들은 조회수가 저조하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음 영상을 기획 중이다.
-유튜브를 찍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두 가지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그다지 큰 목표 없이 방탕하게 살았다. 밑바닥까지 간 사람도 이렇게 재기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사업과 관련된 이유다. 내가 하는 중고차 사업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시작했다. 중고차 거래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다. 영상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이런 편견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튜브를 못 봤을 독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지금은 사업을 하고 계시지만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큰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일신토건이라는 토목건설회사를 차리셨다. 그때는 토목건설로 나라가 크게 성장하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대구경북 구간을 공사하셨고 수성못길, 동대구로 등을 만드셨다. 아버지께서는 토목건설업을 그대로 물려받기보다는 호텔관광업을 하고 싶어 하셨다. 그것 때문에 할아버지와 불화가 있으시긴 했지만, 결국 호텔수성과 아리아나 호텔을 창업하셨다.
-수성못과 호텔수성에 추억이 없는 대구인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구 사람이라면 공히 인정할 만한 재벌가다.
▶맞다. 사실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좀 쓰리다. 유튜브에서 아버지가 호텔수성을 1억에 팔았다고 말했는데 어머니한테 한 소리 들었다. 1억 아니고 2억에 팔았다고 혼내시더라. 그게 그거 아닌가.(웃음)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다는 마음과 '저게 원래 우리 거였을 수도 있는데'하는 아쉬움이다.
-수성구 땅 60%를 소유하기도 했을 정도로 대구에서도 손에 꼽는 재벌이셨다던데.
▶그 땅을 가지고 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께서 아주 오래 전에 이미 현금화하셨다. 당시에는 '현금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게 정답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던 환경이었던 건 맞다. 다만 할아버지께서는 늘 근검절약하셨다. 일용직 노동자로 시작해서 자수성가를 하신 분이셔서 그렇다. 어릴 때 밥 먹다가 밥알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숟가락으로 내 머리를 탁 때리시면서 밥알 싹싹 긁어 먹으라고 혼내셨다. 그 정도로 절약하고 절제된 삶을 사셨다.


-호텔수성을 만드신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
▶재벌 2세는 어떻게 살았을 것 같나. 부잣집 아들은 꿈이나 목표가 그다지 없다. 이미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아버지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
아버지는 27살의 나이에 수성호텔 회장이 되셨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데 인생은 한 번 산다. 그럼 뭘 하겠나. 술 마시고 노는 거다. 아버지는 집에 한 달에 한 번 들어오셨다. 한 달에 한 번쯤은 술이 안 내키니까 쉬려고 들어오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심하게 하면서 당신 나름의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다.
-대표님 역시 어린 나이부터 방탕한 삶을 살았다. 그런 부유한 환경 탓이 클까.
▶부유한 환경 때문에 목표 의식이 없던 것, 또 부모님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탓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탈선하기 시작했다. 30대 때까지도 그랬다. 돌이켜보니 그때 채워지지 않은 사랑을 자꾸 갈구하고, 늘 뭔가에 중독됨으로써 그 결핍을 해소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물론 물 빠진 독 같은 것이라 결핍은 해소되지 못했다. 또 다른 중독거리를 미친 사람처럼 찾아다녔다.
-어디까지 방황했는지 공개해 줄 수 있나.
▶클럽, 술, 게임 등 중독 안 됐던 것이 없다. 한 게임에만 돈을 2~3억씩 썼다. 아리아나 호텔 안에 술집이 있었는데 6개월 치 외상 술값만 1억5천만원이 청구된 적도 있었다. 그때가 20살 때였는데 회장 아들이라고 하고 마구 술을 시킨 거다. 그 이후에 점점 더 강도가 심한 중독의 세계로 넘어갔다.
-강도가 심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가.
▶태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을 때 마약까지 손댔다. 클럽에 같이 다니던 친한 형이 '기분 좋아지는 약'이라면서 뭘 건네더라.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근데 주사기가 없으니 바로 의심을 거뒀다. 그때는 마약이라면 주사기로 투여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거다. 술도 취했겠다, 판단력이 흐려지니 멍청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약 중독자가 됐다.
-마약까지 했을 줄은 몰랐는데.
▶마약 하다가 경찰에 잡혔고 소송만 1년 반을 진행했다. 지금은 처벌을 다 받았고 마약 전과가 2범이다. 자랑하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마약은 벗어나기가 몹시 어렵다. 1년 반 동안 조사 받고 처벌을 받기까지 정말 고통스러웠다. 어떤 처벌을 받을지,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이 1년 반이 지속되니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기분이더라. 부모님과 내 가족들이 그제야 보였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제는 그런 중독들에서 모두 벗어났다. 건강히 신앙생활을 하고 최선을 다해 사업하면서 살고 있다.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에피소드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한번 새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희망이 됐으면 한다.

-이야기를 들으니 재벌 3세의 삶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재벌은 3대를 못 간다고 하지 않나.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자에게는 오히려 저주이고 재앙이다. 그 교훈을 30년 넘게 방황하면서 배웠다. 방황에서 벗어난 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내도 공황장애가 올 만큼 나 때문에 힘들었다. 아주 미안하다.
-결핍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어린 시절이라고 했다. 과거의 자신에게 한마디 한다면.
▶'네 잘못이 아니다, 너무 아프지 마라'고 하고 싶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별거를 하셨는데 그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 자신을 내 스스로 할퀴었다. 그렇게 생긴 상처를 술과 게임, 마약 등으로 치유하려고 했던 거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안고 성장한다. 그 결핍들은 항상 무언가로 잘못 발현이 되는 것 같더라. 내 결핍이 뭔지 찾고,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기를 지나고 사업을 시작했다. 세차장으로 시작했던 것이 세차용품, 중고차 거래 등으로 넓혀가더니 지금은 법인 5개 정도의 큰 사업체가 됐는데.
▶'마프라'라는 세차용품 수입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넓혀갔다. 한국에 이 제품을 잘 판매하니까 이탈리아 본사에서 아시아 총판을 우리에게 맡겼다. 중국, 일본, 태국, 대만 등 5개국에 마프라 제품을 수출한다. 그러고 나서 렌터카, 중고차, 사고대차 오토스테이 앱 개발까지 자동차와 관련된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업이 성공하니 한 댓글에서는 '역시 사업가의 DNA가 보인다'고 말하더라. 사업을 잘 일구고 있는 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어렸을 때 할아버지의 근면 성실함을 보고 배웠던 게 내 몸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또 아버지는 사람의 능력을 잘 간파하고 그걸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리더십이 있다. 수성호텔도 전문 경영인에게 맡겼다. 그런 믿고 맡기는 것, 되는 걸 밀어주고 안 되는 건 빨리 포기하는 결단력을 아버지에게 배웠다.

-재벌이 3대를 못 간다더니 이렇게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킨 모습에 힘을 얻는다는 유튜브 구독자도 많다.
▶시련을 겪더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유한 환경 같은 어떤 저주들, 밑바닥까지 내려간 경험들이 오히려 자신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방황하는 시간들이 외려 질서 있는 삶을 준비하는 시간인 거다. 하루 아침에 환경이 바뀌지 않더라. 그렇지만 한 걸음씩 차근히 가면 환경은 분명 바뀐다.
-누군가의 손자, 아들이었던 대표님도 이제는 네 자녀를 둔 가장이 됐다. 아버지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로써 뭔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행동, '본'이라고 생각한다. 애들한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본인은 거짓말하면 안 되지 않나.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그 자체를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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