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에 휩쓸린 생명들 줄잇는 구조의 손길…
산불 화상 피해 입은 반려동물 치료…자원봉사자·수의사 발벗고 적극 나서
영역동물 고양이, 개보다 상태 심각…안정 후 드레싱·수액 요법 등 처치
개 식용 금지 무색 농장 여전히 존재…재난 속 동물도 큰 고통 돕기 나서야
재난 상황에서 반려 동물은 우선 순위가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재난 발생 시 대피소에는 반려 동물과의 동반 입장도 어렵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지자체, 동물보호단체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수의사들이 제도와 생명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여러 동물구조단체들은 산불 경보 단계가 3단계로 격상된 지난달 22일부터 경북 일대 산불 피해 지역에서 구조 작업을 벌여왔다.
◆꼭 살려야 하는데
온 몸에 화상을 입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난달 28일 안동에서 병원으로 긴급히 구조되어 왔다. 뒷다리와 엉덩이의 털은 다 타버렸고 벗겨진 피부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왔다.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어서 코는 문드러지고 한쪽 눈만 겨우 뜬 상태. 목숨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반려동물의 경우에는 TBSA (Total Body Surface Area) 즉 화상 부위가 신체 표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그 중증도를 평가한다.
이 가여운 고양이의 TBSA는 무려 80%. 다시 말하면 전체 고양이 몸의 80%가 화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보통 TBSA가 30%를 넘으면 중증 화상환자라고 본다. 누운채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는데 그마저도 희미하게 들렸다. 꼭 살려야 하는데… 살릴 수 있을까? 마음이 조급해졌다.
화상 동물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치료는 수액 요법이다. 화상을 입은 부위가 넓을수록 그만큼 많은 양의 체액이 소실되고 그에 따라 감염의 확률도 높아진다. 어느 부위든 감염이 진행되면 곧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서둘러서 화상 부위를 세척하고 화상 연고를 바른 후에 드레싱을 했다.

그리고는 수액 영양제를 투여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처방한 후 집중산소입원실로 옮긴다. 이와 함께 폐기능 회복을 위한 고압산소실치료와 피부레이저재활 치료는 2~3주간 매일 3~4회 정도 반복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지 말단의 피부와 지단부위가 소실되면 상황에 따라서는 피부 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의 경우 화상을 입게 되면 빨리 화상 부위를 차가운 물에 담그는 것이 응급 처치 방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물은 사정이 좀 다르다. 개와 고양이의 경우는 보호자가 화상 부위를 찬 물에 담그는 과정에서 통증과 불안감으로 발버둥치게 된다. 강제 보정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무리하게 연고와 붕대를 감으려는 시도도 옳지 않다. 무리한 드레싱보다는 창액이 확인된다면 깨끗한 패드를 수시로 교체해 주고 넥칼라를 착용시켜주는 것이 유리하다. 동물을 안정시킨 후에 동물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현명하다.
화상의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지체없이 동물병원을 찾아야 한다. TBSA 10% 이상이면 체액과 혈장 단백질의 소실이 심각한 화상 환자로 분류하는데 동물의 경우 사지 발바닥 화상이면 TBSA 10% 이상으로 판단한다. 만약 화상 부위의 피부가 탈락되거나 얼굴에 화상을 입었을 경우는 바로 동물병원으로 긴급 이송하도록 한다.

◆고양이가 개보다 더 심각한 화상
3월28일. 거의 초토화 되어버린 청송에서도 고양이 한마리가 구조되어 왔다. 화마에 직접 노출된 탓인지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TBSA도 60% 이상. 그 와중에 낙하하는 물건에 맞은 듯 좌측 앞다리는 절단되어 있었다.
같은 날 몇 마리의 개들도 산불의 피해를 입고 병원을 왔는데 고양이에 비해서는 비교적 화상의 정도가 가벼웠다. 발바닥에 화상을 입은 개였는데 몸통 부위에 털이 탄 흔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불길을 잘 피해 큰 상처는 입지 않은 듯 했다. 발바닥을 소독할 때마다 통증으로 고통스러워 했는데 그나마 고양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3월23일. 의성 산불이 확산되던 날 진돗개가 구조되어 왔는데 성격은 무척 온순했다. 산불 때문에 집을 버리고 피난해야만 했던 가족들이 다행히 개의 목줄을 풀어주었기에 가벼운 상처만 입은 듯 했다 기본적인 치료만 받고 보호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또 경남 산청에서 구조되어 온 개는 나이가 18살로 초고령이었다. 비교적 건강했지만 산불과는 관계없이 유선 종양에 생식기 질환을 갖고 있었다. 이 친구는 산불로 주민들이 피신할 때 보호자인 어르신이 큰 개를 동반할 수 없다 하여 동물보호단체에 위탁을 요청한 경우였다.
이번 산불 화재로 확인되는 특징 중 하나는 고양이가 개보다 더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는 사실이었다. 개는 묶이거나 갇혀있지 않는 한, 잘 달리는 기동성을 활용해서 위험 지역을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반면에 영역 동물의 본능을 가지는 고양이는 불안한 상황에 놓일 수록 자신이 평소 눈여겨 두었던 은신처로 숨어든다. 하지만 연무가 심해져 호흡이 곤란한 고양이가 은신처에서 뛰쳐 나올 때는 이미 사방이 불길에 휩싸여져 있기 때문이다.

◆개식용 금지 법안 무색케 해
29일 토요일 저녁, 구조되어 온 동물들을 치료하고 있는데 TV뉴스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큰 불이 지나간 안동의 개 사육장. 주인이 철창문을 잠근 채로 혼자만 대피하면서 갇혀 있던 개 700여 마리가 그대로 타 죽었다는 사연이었다. 커튼으로 가려진 철창 안은 시커멓게 타 죽은 개들이 겹겹이 누워 있었고 녹아 버린 뜬 장을 겨우 빠져나온 개 몇 마리가 개울에서 웅크리고 있는 장면도 보였다. 산 동네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대형 도사견들을 밀집 사육하는 개농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개식용 금지 법안이 시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의성의 산불 현장에서는 100여 마리의 대형견이 갇혀 있는 개농장도 있었는데 동물보호단체 '루시의 친구들'이 매캐한 연기에 노출돼 있는 개들을 구출하려고 했지만 개농장주가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아서 화상입은 일부 개만 구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물보다 못한 사람들은 또 있다. 동물구조단체 '위액트(WEACT)'에 따르면 산불 피해견을 위해 준비해둔 사료 2톤을 28일 오전 6시쯤 청년 대여섯 명이 다 훔쳐갔다고 했다. 영덕군민운동장에 사료를 모아놓고 이를 거점으로 수색을 진행하고 구조한 피해견들에게 먹일 사료였는데 말이다. '위액트'의 SNS를 보면 이런 속상한 소식들이 많이 보인다.
피투성이가 된 채 고무통에서 홀로 앉아 있는 개도 있었는데 허기에 지친 채 사람을 보자 힘겹게 몸을 일으켜 다가오지만 목줄 때문에 얼마 걷지도 못하는 모습도 있었다. 경황이 없었겠지만 보호자들이 조금만 더 노력해서 동물의 목줄이라도 풀어주거나 우리의 문을 열어두고 대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보호단체,반려동물 치료나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발표한 자료(30일 기준)에 의하면 인명피해는 사망 30명, 중상 9명, 경상 36명. 피해영향구역은 4만8천238ha , 주택 피해는 3,285채, 이재민은 4,700여 명. 그리고 국가유산 30건에 농업시설 2천여 건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발표된 산불 피해 숫자들 뒤에 숨겨진 숫자들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바로 산불로 피해를 입은 반려 동물들과 농가에서 키우던 가축들의 숫자 말이다.
현장에서는 방치된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수색해 구조했고 대피소 인근에 2곳의 반려 동물 임시 보호소도 설치했다. 또 자원봉사자들은 화상의 피해가 큰 동물들을 동물병원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고 있다. 지자체도 큰 힘이 되고 있는데 의성군은 유기견 보호소 및 펫월드 시설 일부를 구조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30일 저녁. 안동에서 구조된 화상입은 고양이가 조금씩 기력을 되찾고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회복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동물보호단체 '루시의 친구들'과 자원봉사 수의사들은 임시 진료소를 꾸려 최일선에서 동물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고 밤 사이에도 개 두마리가 이동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대구의 동물병원들로 긴급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제 필자도 안동으로 가기 위해 밤 길을 나선다.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댓글 많은 뉴스
전한길 "탄핵 100% 기각·각하될 것…尹 복귀 후 개헌·조기총선 해야"
"헌재 결정 승복 입장 변함없나" 묻자…이재명이 한 말
尹 선고 지연에 다급해진 거야…위헌적 입법으로 헌재 압박
'위헌소지' 헌법재판관 임기연장법 법사위 소위 통과…문형배·이미선 임기 연장되나(종합)
박지원 "탄핵 심판 5:3?…기각하면 제2의 이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