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연구자
월전 장우성은 학을 좋아해 학 그림을 많이 그렸다. 흑백이 심플하게 어우러진 고고한 자태에 정수리가 붉은 단정학이다. 훨훨 날 때는 날갯짓이 우아하고 곧게 서 있을 땐 의연한 듯하다. 예로부터 그런 모습을 상서롭게 여겨 학을 귀하게 대접했다. 우뚝하게 빼어난 인물을 학립계군(鶴立鷄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로 비유한다. 문(文)을 상징해 무(武)를 상징하는 호랑이와 대비되며 문신 관료의 흉배에 들어갔고, 학수천세(鶴壽千歲)라는 말이 전해오며 장수하는 동물로 여겨 십장생의 하나로 꼽는다.
그림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신선을 태운 학이 여러 차례 나오고, 문양으로는 고려청자의 학이 있다. 청자의 비취빛 하늘을 나는 학과 흰 구름이 어우러진 흑백 상감의 운학문은 공예왕국 고려를 대표하는 문양 중 하나다.
문치의 나라인 조선에서 학은 더욱 사랑받아 문반(文班) 관청의 꽃인 홍문관이나 규장각에서 학을 길렀고, 양반사대부들은 물론 왕실의 종친에서부터 향촌의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학을 직접 키우기도 했다. 학이 나오는 그림들 중 단원 김홍도가 자신의 집을 그린 '단원도'를 보면 사랑마당에 학이 노닌다. 김홍도도 학을 키웠나보다. 조선시대엔 학을 길들이는 순학(馴鶴)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장우성의 경우는 주변에서 모습이 학을 닮았다고 해 더욱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 붉은 해를 향해 날아가는 학, 하늘을 향해 우는 학, 춤추는 학, 녹색 들판의 학, 환경오염을 상징하는 학 등등 다양한 학을 그려 학의 화가라고 할 만하다. 그런 학 그림들 중에서 한겨울 눈밭의 학을 그린 이 작품은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문학(問鶴)', '학에게 물어본다'를 주제로 삼은 시의도(詩意圖)다. 제화를 풀어보면 이렇다.
까마귀와 솔개는 먹이를 다투고 참새는 둥지를 다투는데
눈보라 몰아치는 연못가에 홀로 서있네
온종일 한 발로 얼음 밟고 서서
울지도 날지도 않으며 무슨 생각 하고 있나
향산(香山, 백거이)의 시를 적다. 나는 늘 이 시를 애송하며 때로 그림 위에 쓴다. 월전노부(月田老夫, 장우성)가 한벽원(寒碧園)에서 그리다.
장우성은 항상 애송하는 시라고 했다. 백거이가 그랬던 것처럼 무리를 떠나 홀로 풍설 속에 고요히 서있는 학에서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겹쳐보았을 듯하다. 머리를 돌려 깃 속에 부리를 묻은 학 한 마리 뿐 화면은 텅 비었다. 왼쪽 아래 여백엔 당호 중 하나인 '백수노석실(白水老石室)'이 유인(遊印)으로 찍혀있다. 맑은 물처럼, 오래된 돌처럼, 학처럼 장수한 장우성이 81세 때 그린 자화상 같은 학 그림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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