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학생부 관리에만 수백만원씩 지출
상위권 대학 학생부 전형 선호도 높아
정보 격차⋅불안 심리 사교육 부추겨
입시 정책이 바뀌면 웃는 것은 '사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제도에 불안한 학생과 학부모가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교육비가 30조원에 육박했다. 10명 중 8명 학생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 사교육 업계도 때맞춰 변화된 입시 전형에 맞는 다양한 상품들을 내놓는다.
대입 수시모집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확대되면서 사교육이 학생부까지 파고들고 있다. 학생의 성취 과정과 학업 역량을 높게 평가하는 학종의 특성상 학업·진로를 연계한 차별화된 학생부가 요구돼서다. 사교육 업체들이 한 학기 수백만원에 달하는 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교육 양극화를 부추길 우려가 제기된다.
◆한 학기 학생부 관리에 수백만원씩
"학생이 학생부 자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도록 저희가 싹 다 완성형으로 만들어 드려요. 매달 수학 과외 하나 더 시키는 셈 치시면 돼요."
대다수 컨설팅 업체들은 학기제로 운영하며 학생들을 1대1 지도하는 방식으로 학생부를 관리한다. 학기 시작 전 대면으로 학생의 학업, 진로 관련 상담을 진행한 후 메신저를 통해 비대면, 실시간으로 계속 소통하는 방식이다. 엄연한 불법 행위인 학생부 대필도 사교육 시장에선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학생부 전반을 관리하지만 주로 수행평가와 보고서 작성에 중점을 준다. 수행평가와 보고서를 통해 관찰된 학생의 자기주도성, 열정, 발전가능성 등 특징이 학생부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조사할 주제에 대해 큰 틀을 짜주기도 하고 학생들이 작성한 내용을 첨삭해 준다. 희망 진로에 맞춰 교과 활동, 비교과 활동 등 커리큘럼을 미리 짜주기도 한다.
학원들은 1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학생부 관리를 시작해 3학년까지 연속해서 받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대구 수성구 A학원 관계자는 전화 상담에서 "1학년 때 폭넓은 탐구를 진행하고 2, 3학년에 심층·심화 학습으로 확대해 나가는 깊이 있는 학습을 대학들이 선호한다"며 "학생부에 학년별 활동이 체계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보통 (컨설팅을) 한번 시작하면 쭉 받는 편"이라고 말했다. 중구 B학원 관계자도 "희망 진로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일관되게 보여줄 수 있도록 하나의 스토리를 짜야한다"며 "지망 학과와 관련된 선택 과목 조합을 3년 동안 전략적으로 구성하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학생부 사교육 컨설팅 가격은 학원별로 천차만별이다. A학원은 첨삭 횟수 제한 없는 학생부 관리 비용으로 한 학기 기준 270만원을 받는다. B학원은 한 학기 학생부 관리엔 220만원, 건별로는 보고서 한 건당 60만원을 책정했다. 서울 대치동의 C학원은 한 달에 100만원, 한 학기 등록은 500만원이다.
온라인을 통한 화상 컨설팅은 비교적 저렴했다. 서울에 본사를 둔 한 컨설팅 업체는 횟수 제한 없는 한 학기 온라인 컨설팅 비용으로 180만원을 제시했다. 매달 10~20만원을 내면 상위권 대학 합격자들의 학생부 원본을 무제한으로 열람할 수 있는 온라인 구독 사이트도 생겨났다.
◆상위권 대학 학생부 전형 선호도 높아
학종은 학생부를 중심으로 단순한 교과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의 학업 역량 ▷진로 역량 ▷공동체 역량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정시 수능 전형,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이 점수 위주의 정량(定量)적 평가를 한다면, 학종은 대학이 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잠재력과 소질을 정성(定性)적으로 평가한다.
대입의 정성평가 위주 전형은 2007년 '입학사정관전형'으로 시작했다. 정부는 당초 기존의 획일적인 점수 위주의 선발방식에서 벗어나 교내‧외 활동, 면접 등을 활용해 학생의 역량을 다면적으로 평가한다는 목적으로 해당 전형을 도입했다.
하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교외 경시대회 참가, 논문 집필, 공인어학성적 획득 등 과도한 외부 스펙 경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으로, 2013년 교내 활동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학종으로 전환됐다. 그럼에도 일부 학교에서 교내 수상실적 몰아주기, 학생부 조작 등 교내 활동 경쟁 심화와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교육부는 2018년 '학종 공정성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학생부에서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소논문을 금지했고, 수상경력과 자율동아리 개수도 제한됐다.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도 순차적으로 폐지됐다.
현재 교내 교과 및 교과 외 활동을 위주로만 반영되고, 2024년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라 교과 영역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경향성을 보인다.
입학본부장을 지낸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학 교수는 "최근 대입 기조는 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학생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해주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학종은 시대의 변화에 맞는 역량 중심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위권 대학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형"이라고 말했다.
◆정보 격차⋅불안 심리 사교육 부추겨
학생부는 ▷인적⋅학적사항 ▷출결상황 ▷수상경력 ▷자격증 및 인증 취득상황 ▷창의적 체험활동상황(자율·동아리·진로활동) ▷교과학습발달상황(교과 이수 현황·교과 성적·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독서활동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등 총 8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학생부에서 사교육 컨설팅 대상이 되는 주요 항목은 ▷학생의 비교과 활동을 담은 '창의적 체험활동상황(창체)' ▷교과 활동의 학업 능력·태도를 담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행특)' 등 3가지다. 해당 항목에는 담임 교사, 각 교과목 교사, 동아리 담당 교사 등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찰과 평가 내용이 서술형으로 기록된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르면 학생부 기재는 교사의 고유 권한으로 학생·학부모로부터 내용을 전달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교사들이 모든 학생들의 특징을 세심하게 관찰해 꼼꼼히 기록하기 현실적으로 힘든 탓에 대체로 학생들이 써 온 자기평가서를 참고한다. 일부 학교는 학생들이 써 온 내용을 토시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반영한다. 이같은 현상은 소위 '성적이 우수한 학교'일수록 더욱 은밀하게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액 사교육 컨설팅의 유혹에 빠진다. 좀 더 매력적인 학생부를 만들면 대학 상위권 대학 진학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은 이들의 정보 격차와 불안 심리를 활용해 사교육을 더욱 부추긴다. 내신 성적 관리, 수능 시험 준비 외에 학생부 관리까지 모든 것을 학생 스스로 하기 쉽지 않은 상황도 사교육행에 한몫한다.
고등학생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윤모(46) 씨는 "학생부 세부 사항을 다 이해하기 어렵고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막막해 1학년 때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다"며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비용을 내는 게 크게 아깝진 않다"고 귀띔했다.
컨설팅 수요가 늘어나자 사교육 업체 증가세도 두드러진다. 대구 지역에서 학생부 컨설팅을 제공하는 학원은 지난해 기준 총 30곳이다. 2020년 4곳에서 5년 새 7배 이상 늘었다. 수성구가 18곳으로 가장 많았고 ▷달서구 9곳 ▷중구 2곳 ▷남구 1곳 순이었다.
올해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내신 성적이 5등급제로 완화되며 앞으로 학생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권민성 대륜고 진학부장은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제로 바뀌면 1등급 비율은 4%에서 10%로 늘어나게 된다"며 "내신 변별력이 약화되면 대입에서 우수한 학생들 선발하기 위해 학생부 등 정성평가의 영역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학종 선발 비중이 더 높아지거나 정시 또는 수시 교과전형에서 학생부 내용을 반영하는 대학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부를 반영하는 경향이 높아지면 사교육 컨설팅 시장도 좀 더 성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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