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조선일보 1면에는 "2030 우린 86세대 부모와 달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좌파 부모와 달리 우파로 성장한 2030 인터뷰였다. 첫 화두를 연 건 대학생 박준영(24) 씨였다. 박 씨는 2023년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86세대' 부모와 정치 현안으로 자주 부딪쳐서 집을 나왔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아들은 집을 나올 정도로 사상을 강요 당한 걸까. 취재 결과 박 씨는 박성제(58) 전 MBC 사장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초대 뉴미디어비서관이었던 정혜승(54) 씨 아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와 늘 대립각을 세우는 MBC의 전직 사장 아들이 조선일보 1면에 "나는 우파요"하고 공언했으니 박 전 사장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박 전 사장은 "난 아들을 존중한다"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각자 생각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 아들이 어린 사람도 아니고 20대 중반인데 아버지가 뭘 어떻게 하겠나"라며 "논쟁하고 토론도 하고 했는데 생각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폭력적인 것만 하지 않으면 (우파) 활동하는 걸 막지는 않겠다'고 했다. 가정 내에서도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언뜻 보면 아들의 사상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박 사장의 온도와 아들의 온도는 많이 달랐다. 박 씨가 코로나 백신 접종을 두고 "개인 판단이나 자유를 국가가 강요할 수 없다"고 말하자 박 전 사장과 정 전 비서관이 한 말은 "네가 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였다고 한다. 서부지법 사태 때는 "거기 모인 애들 다 바보고 신천지"라고 해서 박 씨는 집을 나갔다.
스물넷 먹은 대학생 자녀에게도 "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는 부모들은 대체 어렸을 때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을까. 박 전 사장이 더 이상의 인터뷰를 거절해 캐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 1월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권정민(49) 서울교대 교수의 교육 방식을 보면 좌파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이 왜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는 우파가 되는가 어렴풋이 유추해볼 수 있다.
권 교수는 1월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는 글을 썼다. 아들이 중2 때쯤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여자도 똑같이 가야지" "우리 사회는 남자를 너무 차별하는 것 같아" "남자가 왜 자기를 she로 불러달라고 해?" "여성부는 폐지해야 해"라는 말을 해서 '극우 유튜버'가 심어놓은 사상에서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다고 한다. 권 교수에 따르면 아들은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 조던 피터슨 유튜브 등을 주로 봤다.
권 교수는 아이를 극우 사상에서 빼오는데 쓴 방법은 권 교수식 '토론'이었다. 권 교수가 말한 토론은 이랬다. 왜 여성부 폐지가 남자인 아들한테도 손해인지, 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차별이 심한지, 왜 사람을 부를 때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불러줘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얘기하는 '페미'와 진짜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른지를 수 개월에 걸쳐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글을 읽다 보니 권 교수의 가정 교육 방식도 눈에 들어왔다. 권 교수는 "아들을 깨어있는, 진보적인, 인권감수성이 높은 남자로 키우기 위해 교육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시켰겠나. 어릴 때부터 매일 2~3시간 토론을 하고, 전세계를 데리고 여행 다니며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고, 시사 문제를 아이와 이야기했다. 예술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클래식음악 공연, 발레공연, 뮤지컬공연, 국악공연, 미술관과 박물관을 섭렵했다"고 썼다.

권 교수 페이스북을 살펴 보다 그가 누구보다 '폭력'에 민감하다는 것에 의아해졌다. 한창 놀고 싶어하는 중학생을 발레 공연, 국악 공연에 데려가고 다녀와서는 날마다 2~3시간 토론하는 건 폭력이 아닌가. 그는 "극우는 폭력적이다. 극우는 폭력을 약자에게 휘두른다. 이들은 약자에 대한 폭력을 통해 계급화를 추구한다"고 했다.
현재 고교생인 권 교수 아들은 동급생들에게 '빨갱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아들이 학교에서 빨갱이라고 불리는 걸 아는 권 교수는 이 글을 쓴 직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아들 구출기를 또 다시 설파했다. 이게 또 다른 폭력인 걸 권 교수는 모르는 걸까.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라고 한정짓는다면 자신의 아이를 진보적인 남자로 키우고 싶어하는 권 교수는 2005년 시위대를 때려잡던 노무현 정부가 '진보 정권'이었다고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갑자기 권 교수에게 "아들이 혹시 최근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는지요?"라고 묻고 싶어졌다. 박 전 사장 아들이 부모와의 논쟁을 피하려고 했던 행동이 기억에 남아서다.
"한동안 탄핵을 찬성한다는 식으로 연기를 했어요. 안 그러면 제가 힘드니까요. 여의도 탄핵 찬성 집회에 같이 가자 할 때는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둘러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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