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태진] 탄핵효용체감의 법칙

입력 2025-03-10 18:46:56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조지 오웰의 '코끼리를 쏘다'는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했던 작가의 이야기다. 발단은 미쳐 날뛰는 코끼리에 밟힌 사람이 압사했다는 신고다. 현장에 가 시신을 확인한 작가는 사냥총으로 코끼리를 잡아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주민들은 "영국인이 코끼리 사냥을 한다"고 술렁이고 사냥 장면을 놓칠세라 작가의 뒤를 쫓는다.

막상 코끼리를 발견한 작가는 총으로 잡을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평화롭게 논에서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가 위험해 보이긴커녕 주인만 나타나면 해결될 문제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구경꾼이 된 주민들은 그가 총을 쏘기만을 기다린다. 이를 눈치챈 작가는 발포(發砲)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비웃을 거라는 압박감에 빠진다.

더불어민주당이 또 탄핵을 들먹인다. '코끼리를 쏘다'의 주인공을 민주당으로, 주민들을 열성 민주당 지지자로, 발포를 탄핵이라 치환하면 억지스러운 비유는 아닌 듯하다. 좀체 활용하지 않던 제도 단행이 높은 효용성을 가지려면, '필살기'라는 희소성을 띠려면 에너지가 응축(凝縮)됐을 때 그리고 적절할 때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아름다운 말, '관세'가 있다면 민주당에는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만병통치약 '탄핵'이 있는 듯하다. 마치 탄핵의 기치 아래 스크럼을 짠 대오(隊伍)처럼 보인다.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 이유도 예의 그 이유, 내란 동조다. 지난해 말 탄핵소추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심판 결론은 나오지도 않았다. 하물며 스물아홉 번의 탄핵소추 중 결론이 난 네 번도 모두 인용되지 않았다.

탄핵 빈도(頻度)와 국민이 느끼는 효용(效用)의 관계를 증명하려는 '탄핵효용체감'을 소재로 삼은 논문을 아직 찾아내진 못했으나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관련한 논문이 발표되더라도 하등 어색할 게 없을 것 같다. 외려 그걸 궁금해할 정도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국민의 정권 불만족도(不滿足度)와 비례하는지, 반대로 "또 저런다"는 반응값이 높아지는지 말이다.

'내란 우두머리·동조·선동'이라는 '내란 혐의 처단 용어 세트'도 마찬가지다. 적법 절차에 따른 법률안 거부권 행사 등을 '내란 동조'라 매번 규정하고 선동하는 건 민주당이다. 윤 대통령을 향한 분노에 발맞추지 못하거나 처벌 의지에서 벗어나면 '내란 동조·선동'이라는 오랏줄로 묶는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직후부터 '내란 선동·동조'라는 말은 대법원의 최종 선고처럼 어디에나 붙어 효력을 발휘하려 했다.

각성(覺醒) 충만기(充滿期)에 들어간 일부 지지자들은 역사의 죄인이 돼선 안 된다고 일갈(一喝)하며 형법 87조에서 91조까지 명시된 내란 관련 규정 조항을 어디든 적용하려 했다. 묶는 대로 묶이는 판이니 총리고 장관이고 죄다 '내란 동조'로 묶였다. 내란 획책을 알고도 도왔다는 것이다.

정·관계에 한정된 게 아니었다. 가수 나훈아는 양비론(兩非論)을 폈다는 이유로, 가수 임영웅은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몰상식한 공인 취급을 받았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 손발을 다 묶고 물에 빠뜨리고는 물에 뜨면 마녀임이 입증됐으니 화형(火刑)시키고, 물에 가라앉으면 마녀 혐의는 없애나 물귀신으로 만든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죽이겠다는 건데 이런 것들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어지럽히는 작태(作態) 아닌가.